"성폭행 살인범과 연쇄살인범은 신속히 사형을 집행하는 게 정의다."
한동안 잠잠했던 사형집행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선봉'에 선 것은 물론 정치권이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의 피의자가 검거되면서 흉악범에 대한 비난여론이 치솟자 여당 원내대표를 비롯, 일부 의원들이 사형집행의 필요성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정부도 조심스레 거들고 있다. 주관부처인 법무부는 12일 "중립적 입장에서 사형집행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결론이 난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형집행에 대한 태도 변화가 감지된다.
1년쯤 전 '강호순 사건'때도 정확히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치권이 사형집행을 주장했고, 법무부는 검토에 들어갔다. 사형폐지론자들의 반대 서명운동이 뒤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형집행 주장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여론이 가라앉는 것과 함께 언제 그랬냐 싶게 조용해졌다.
이번이라고 별 다를 것 같진 않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단했지만, 합헌과 위헌 의견이 5대 4로 팽팽했다. 게다가 전체적인 취지는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형집행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다.
사형집행의 범죄예방 효과도 의문이지만, 현 시점에서 국익에 도움이 될지도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12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면서 인권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사형 집행국과는 교역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과 정부 일각에서 특정 사건을 빌미로 불쑥 사형집행을 주장하고 그 가능성을 흘리는 것은 무책임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김정우 사회부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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