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에게 애걸도 하고 범인을 유인하려고 여경을 야산에 투입하기도 하고 별 짓 다했어요.” 2003년 9월 하승균 당시 경기경찰청 강력계장은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 는 에세이를 냈다. 부녀자 10명이 희생된 화성연쇄살인사건(1986~91년)을 담당했던 30년 베테랑 강력계 형사의 진한 소회였다. 그는 “형사 특유의 육감도 통하지 않더라”고 헛헛하게 웃었다. 사건은 영원한 미제로 남았다. 화성은>
2010년 3월 ‘김길태, 생활반경 좁아 집 근처 은둔 가능성 높다’(본보 10일 10면)는 프로파일러(Profilierㆍ범죄행동분석요원)들의 분석은 적중했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인의 은신처 위치뿐 아니라 검거시점도 가늠했다.
감(感)으로 수사하던 시대는 지났다. 화성 사건의 뼈아픈 추억은 경찰이 과학수사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고, 2000년 2월 서울경찰청에 범죄분석팀이 생겼다. 당시 프로파일러는 한 명뿐이었다. 그는 홀로 범죄현장을 누비며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련 공부를 했다. 어디까지나 수사지원 부서, 그림자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른바 ‘묻지마’ 범죄와 연쇄사건이 늘면서, 특히 한국일보가 2006년 정남규 사건 때 프로파일러의 활약상을 단독으로 보도하면서 존재가치가 널리 알려졌다. 이후에도 이들은 수많은 강력사건에서 공을 세웠다. 그 수도 39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낮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그 역할을 깎아내리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형사는 묻히고 머리(?)만 쓰는 프로파일러가 부각되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다. 오죽하면 미국 프로파일러의 대가 존 더글러스조차 “범인보다 어려운 상대가 형사”라고 했을까. 미국은 78년 프로파일링을 도입했다. 10년밖에 안된 우리가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논공행상보다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범인을 잡은 형사의 공이 깎이는 것은 아니다.
고찬유 사회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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