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피의자 김길태(33)는 지리에 밝은 사상구 일대 빈집을 옮겨 다니며 경찰의 추적을 교묘하게 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낮에는 은신해 있거나 높은 곳에서 경찰관들의 동향을 살피고 밤에는 절도 행각을 벌였다.경찰의 1차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그의 행적을 재구성해 본다.
김길태는 1월 23일 오전 4시 40분께 사상구에서 길 가던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이후 수배 상태가 되자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월 초 덕포동 이양 집에서 50m가량 떨어진 파란색 대문 빈집에서 2, 3일간 잠을 잤다. 그리고 이양 집에서 100여m 떨어진 무속인 집 빈방에서도 1주일 가량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생활했다. 2월 중순에는 이양 집이 있는 다가구주택 손모씨의 빈집에 들어가 며칠을 지냈다. 김길태는 여기까지는 순순히 진술했다.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2월 24일 이 집에 있었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김길태는 “그 집에서 대변을 보다 누군가에게 들켜 달아난 뒤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상습 성폭행범인 김길태가 이 집에서 상당 기간 머물다 2월 24일 밤 이양을 납치, 성폭행하고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길태는 이날 행적에 대해 “근처 당산나무 옆 공중전화 부스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밤새 일대를 돌아다녔다”고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경찰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 사실을 확인했으나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를 위해 의도적으로 전화를 걸었을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김길태는 다음 날 덕포시장 부근 양아버지 집을 찾아가 이양 집에 남긴 족적 등을 우려해 흰색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이후 그는 사상구 일대를 배회하다 이달 3일 오전 5시께 이양 집에서 30m가량 떨어진 빈집에서 경찰에 적발됐지만 재빠른 몸놀림으로 도주에 성공했다. 당시 남긴 가방에서 휴대폰 2개가 발견됐으나 1개는 배터리가 없었고 다른 한 개는 착ㆍ수신은 안 되고 알람만 가능한 상태였다. 그는 이 휴대폰 알람을 오전 5시로 설정했는데 이 점으로 미뤄 경찰의 활동이 취약한 새벽 시간에 은신 장소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도피 초기에는 라면을 끓여먹다 나중에는 생라면을 먹고 지냈다.
경찰의 수색이 강화하자 김길태는 낮에는 빈집 등에서 쉬거나 옥상 등 높은 곳에서 경찰관 동향을 용의주도하게 살피고 밤에는 음식물이나 돈을 훔치는 절도 행각을 벌였다.
실제로 8일 덕포시장 인근 미용실에서 27만원을, 식당에서도 10차례 이상 음식물을 훔쳤다. 김길태는 미용실에 침입해서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컴퓨터까지 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부산=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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