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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건보 적자 해법은 총액계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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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건보 적자 해법은 총액계약제

입력
2010.03.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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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강보험 재정이 다시 어려워져 건보 공단이 비상경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건보 재정위기는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등에서도 건보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총액계약제나 목표진료비, 포괄수가제 등의 지불제도와 주치의 제도 같은 의료전달체계를 갖춰 의료비 지출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출을 절감하면서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 주도하에 '규제 속의 경쟁(regulated competition)'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올 1월에만 적자가 2,268억 원을 기록해 2010년 말에는 1조8,000억 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 한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예측하여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자구노력을 기울이는 점은 2000년의 재정위기 때와는 달리 위기관리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IMF 당시 부즈엘렌 연구소의 보고서처럼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적인 구조적 취약점은 없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오바마 정부도 부러워하는 우리의 건강보험제도이지만 건강보험 가입자는 가입자대로, 의료공급자는 공급자대로 만족보다는 불만족의 목소리가 높다. 위기의 건보 재정은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공공재로서의 의식이 희박한 탓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이다. 주인 없는 전방위의 도덕적 해이, 겉 다르고 속 다른 바나나 효과가 두드러진다.

원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보험과 관련해 사용된 경제학 용어이다. 이를테면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화재예방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단 보험에 가입한 뒤에는 오히려 화재예방을 게을리하기 쉽다. 추가 비용을 들이는 것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화재가 나도 피해보상을 해 주기 때문에 화재보험에 가입한 주택소유자들은 흔히 적정한 숫자의 소화기 구입을 꺼린다. 화재예방 노력을 열심히 하는데 따른 이득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건보 가입자도 조금만 아프면 병ㆍ의원에서 고급 진료를 요구하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건보 지출이 갈수록 늘고 이에 따라 보험료가 인상되면 가입자들의 불만이 커진다. 이런 악순환 구조의 주된 요인을 일부에서는 과다한 관리운영비, 부정진료, 보험료 징수 누락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보다는 의사의 진료행위에 따라 치료비가 결정되는 현행 행위별수가제에 기인한다.

행위별수가제는 의료기술 개발과 도입을 촉진하고 의료부문 자원의 유입을 늘리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자원 낭비를 초래하고 의료공급자와 소비자간 의 불신을 낳는다. 특히 제3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보험제도 아래서는 거의 무제한적으로 비용이 치솟는다. 이해 관계자의 요구에 따른 재원 배분의 잣대로서는 부적합하다.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은 1970~90년 대에 걸쳐 진료비 지불제도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사후적 보상에서 사전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총액계약제로 전환하여 국민 부담을 줄였다. 우리도 이제는 건보 보험료가 매년 인상되는 악순환을 끊고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진료비 지불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국민부담 총액이 미리 설정되는 총액계약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시급하다.

김민식 한영신학대 사회복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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