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습니다."
전남 순천 금둔사의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어났다.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경내의 하얀 매화꽃도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다. 꽃봄의 신호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섬진강으로 전해졌고 강은 곧 꽃물결로 뒤덮일 날만 기다리고 있다. 곧 꽃강의 화려한 왈츠가 시작으로 전국의 산하가 봄의 축제에 들어간다. 매화와 산수유를 시작으로 벚꽃과 배꽃, 진달래로 쉼 없이 이어지는 꽃잔치다.
올 봄에 펼쳐질 꽃들의 향연을 캘린더로 만들어 봤다. 지역 주민들과 전문가에게 물어 물어 각 지역의 꽃들이 가장 절정을 이룰 시점을 예상해 본 것이다. 봄꽃은 꽃샘추위의 시샘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꽃샘추위가 매서우면 개화시기는 조금 늦춰질 것이고, 꽃샘추위가 미약하다면 꽃봄은 훨씬 일찍 시작될 것이다.
매화로 가장 유명한 곳은 전남 광양 다압면의 섬진마을. 강을 내려보는 산자락의 청매실농원이 섬진강 매화의 산실이다. 이곳은 매화농장이라기 보다는 매화공원이다. 매화의 열매, 매실을 이용한 장아찌 된장 고추장 등 2,500여개가 넘는 장독과 대나무숲, 섬진강이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섬진강을 굽어보는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의 봄꽃은 산수유다. 남원에서 밤재터널을 지나 만나는 구례 산동면이 산수유 군락지다. 지리산온천 위쪽의 상위, 반곡, 대음마을과 19번 국도 건너편 견두산 자락의 현천, 계척마을 등 30여 부락이 산수유를 키우고 있다. 산수유꽃이 피어나면 이들 마을은 노란 구름이 내려앉은 동화 속 세상이 된다.
상위마을 아래의 반곡, 대음마을에선 냇물이 제법 넓어진다. 장정 백여 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널따란 반석이 장관이다. 현천마을은 산수유가 가장 많이 밀집한 마을. 몇몇 사진작가만 찾아 들던 한적한 마을이었는데, 최근 전망대를 마련하는 등 관광객을 맞는 시설을 대폭 갖췄다.
섬진강가 경남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먹점마을이 새로운 매화마을로 뜨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숨은 산 속 오지 마을이다. 섬진강변의 아랫마을 흥룡마을에서 급경사의 좁은 농로를 힘겹게 1.5km 가량 올라가면 먹점마을을 만난다. 협곡이 열리며 갑자기 펼쳐지는 드넓은 공간. 시야가 터지며 거대한 설치작품 같은 층층의 다락논이 시선을 빼앗는다. 그 계단식 논두렁 밭두렁과 산비탈을 온통 하얗게 물들인 것은 매화나무들이다. 30여 가구 대부분 매실 농사를 짓는, 하동서 가장 큰 매화마을이다.
아랫마을인 흥룡마을도 먹점 못지않게 매화로 가득하다. 산비탈서 바라보는 매화의 꽃물결이 마을을 덮고 섬진강을 건너 광양 다압면까지 이어진다.
하동 쌍계사 가는 십리벚꽃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길로 꼽히는 곳이다. 천상의 꽃터널에 벚꽃잎 흩날릴 때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구례에서 이어지는 섬진강변 백리 벚꽃길도 같은 시기 끝없이 긴 꽃물결을 선보이며 환장하게 무르익는 봄의 절정을 토해낸다.
경남 남해도의 봄꽃도 화려하다. 섬에 난 모든 도로를 따라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가장 나무가 굵고 꽃이 화려한 곳은 남해대교에서 충무공전몰유적이 있는 곳까지 5km 구간이다. 수년 전 이 길이 직선화하면서 구불구불한 옛길이 남았고, 한 아름 되는 벚나무들이 한적한 꽃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차면마을 인근의 200m 되는 벚꽃터널이 그 하이라이트다. 차를 세우고 편안히 벚꽃에 취할 수 있다.
상주해수욕장 인근의 두모리 드므개 마을에도 봄이 곱게 내려앉는다. 마을 이름은 포구의 모습이 궁궐 처마 밑에 화재를 막는다는 의미로 물을 담아뒀던 큰 항아리 '드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이 마을의 '다랑이 논배미'는 곧 샛노란 유채꽃으로 가득 넘실댄다. 2005년부터 빈 농지에 유채를 심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만든 곳이다.
남해읍에서 남해대교 가는 길, 이동면 다초리의 마늘박물관 인근 장평지도 아름다운 꽃세상을 선보인다. 작은 저수지 주변이 유채와 튤립, 벚꽃으로 뒤덮인다. 둑가에 모여있는 벚나무가 말간 물 위로 흰 꽃 그림자를 드리우고, 유채와 튤립이 어우러진 색의 향연이 한껏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한다.
순천시 월등면은 매화로 한 번, 복사꽃으로 또 한 번 봄의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희아산(763m)과 문유산(688m), 바랑산(619m) 등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분지에 복사골이 숨어있다. 땅은 비옥하지만 농경지가 협소해 이곳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복숭아나무를 심어 소득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일품매우·재첩국… 봄꽃도 식후경
꽃피는 봄 상춘객을 즐겁게 하는 건 화려한 꽃과 함께 혀를 감동시키는 맛있는 음식들이다.
순천시 연향동 홍쌍리매실가의 '일품매우'는 광양 일대 축산농가에서만 나오는 매실 한우만 고집한다.
매실 사료로 키워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구수하다. 순천 기적의도서관 인근에 있다. (061)724-5455 선암사 입구 승주읍 신성리에 있는 진일기사식당(061-754-5320)의 주 메뉴는 김치찌개 백반이다.
기본 반찬이 16가지다. 진한 젓갈과 어우러진 김치 하나만으로도 밥 한 그릇 뚝딱이다. 김치찌개는 손잡이 달린 프라이팬에 나온다. 신김치 쭉쭉 찢어 넣고 비계 두툼한 돼지고기를 넣고 국물 자박자박하게 끓였는데 맛이 일품이다. 1인분 6,000원.
하동군 하동읍내 동흥식당(055-884-2257)은 섬진강재첩국이 유명하다. 재첩 진국 한 그릇에 7,000원. 섬진강 하구인 망덕포구는 겨울에서 초봄까지 즐겨 먹는 벚굴이 유명하다. 100% 자연산인 벚굴은 어른 손바닥보다 크고 벚꽃이 필 때 가장 맛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하나로횟집(061-772-3637) 등 15개 정도의 횟집에서 벚굴을 내놓는다.
광양 하면 맨 처음 떠올리는 것이 불고기. 쇠고기를 구리 석쇠에 놓아 참나무숯불에 노릇노릇 구운 맛이 명성대로 일품이다. 광양읍 금목서회관(061-761-3300), 시내식당(061-763-0360), 매실한우(061-762-9178), 삼대광양불고기(061-762-9250) 등이 유명하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곡성군 압록 일대는 새수궁가든(061-362-8352) 등 참게와 은어를 중심으로 한 매운탕집이 즐비하다.
영암은 넓은 뻘로 낙지가 많이 잡히는 지역. 특히 학산면 독천리 일대는 갈낙탕이 유명하다. 전라도 한우와 개펄에서 잡은 낙지로 요리하는 영암의 별미 보양식이다.
월출산 자락 도갑사 입구에는 호남식당(061-472-0509) 등 풍성한 닭요리 집들이 있다. 닭 1마리로 4인상을 풀어내는 촌닭정식이 4만원. 닭가슴살과 닭똥집으로 차려낸 닭육회, 껍질 소금볶음, 닭불고기, 한방백숙에 이어 흑임자 닭죽이 나온다. 닭을 육회로 먹는 것은 이 지방의 별미. 닭 1마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양이 푸짐하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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