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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신의 선물' 초콜릿… 처음 맛본 한국인은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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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신의 선물' 초콜릿… 처음 맛본 한국인은 명성황후

입력
2010.03.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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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신(神)의 음료였다. 그 뒤론 귀족들만 마셨다. 그만큼 귀했다. 마시지 않고 씹어 먹는 형태로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누구나 맛볼 수 있게 됐다. '몸값'은 떨어졌지만 대신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초콜릿 얘기다. 남녀의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로 활약하기 시작한 19세기 훨씬 이전부터 초콜릿은 인류 역사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때는 1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이 내린 선물'

지금의 멕시코시티와 멕시코 고원 지역을 호령했던 아즈텍족은 카카오나무의 열매인 카카오콩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 여기며 음료나 약용으로 썼다. 황실에서는 카카오콩을 볶아 옥수수와 물, 향신료를 첨가해 마셨다. 이 음료는 아즈텍족이 썼던 언어인 나우아틀어로 '초콜라틀'이라고 불렸다. 쓰다는 뜻의 '초콜리'와 물을 의미하는 '아틀'의 합성어니 굳이 번역하자면 '쓴 맛 나는 물'쯤 된다.

아즈텍족은 카카오콩을 화폐로도 이용했다. 당시 카카오콩 10알이면 토끼 한 마리, 100알이면 노예 한 사람을 구했다고 한다. 카카오콩이 상당히 값진 식재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6세기 초 아메리카대륙을 탐험한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초콜라틀을 본국으로 가져가 귀족과 부유층에게 소개했다. 새로운 전리품은 스페인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우아틀어에서 '틀'은 명사를 나타내는 어미. 이를 발음하기 어려워했던 스페인 사람들은 멋대로 '테'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초콜라틀이 초콜라테가 됐고, 이후 더 간편한 발음인 초콜릿으로 변했다.

음료에서 고형으로

스페인에서 시작된 초콜릿 열풍은 곧 영국으로 건너갔다. 17세기 영국의 귀족과 신사들은 수시로 초콜릿애호클럽이나 초콜릿하우스를 찾았다. 이곳은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상위계층 사람들에겐 열띤 토론장, 중산층에겐 문화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후 초콜릿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바로 산업혁명이다. 여러 산업에 신기술이 도입됐다. 식품 분야도 예외일 수 없었다. 1828년 네덜란드의 한 식품기술자는 카카오콩을 압착해 지방을 뽑는 새로운 기술로 코코아버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를 이용해 초콜릿은 음료가 아닌 크림 형태로 변신했다. 틀에 부어 모양을 내는 판형 초콜릿은 그로부터 약 20년 뒤 영국에서 등장했다.

들고 다니며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된 초콜릿은 급속도로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초콜릿의 시장성을 간파한 사람들은 대량생산으로 눈을 돌렸다. 1800년대 중후반 영국뿐 아니라 스위스와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 여러 나라에 우후죽순으로 초콜릿 회사가 들어섰다. 밀크초콜릿을 비롯해 지금까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갖가지 초콜릿이 바로 이때 탄생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초콜릿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용식량으로 쓰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콜릿은 조선시대 러시아 공관원이 명성황후에게 선물로 전달한 게 최초로 알려졌다. 해방 직후까지도 초콜릿은 일부 특권층의 '귀한 음식'이었다가 한국전쟁 때 미국이 군용초콜릿을 들여오면서부터 일반인에게도 널리 소개됐다.

초콜릿에 담긴 의미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로 주는 관습이 생기기 시작한 것 역시 19세기 유럽의 초콜릿 유행과 무관하지 않다. 1868년 영국 초콜릿회사 캐드버리가 예쁜 그림이 그려진 선물용 초콜릿 박스를 내놓았다. 시를 적어 보냈던 15세기, 손수 만든 장식을 붙인 카드가 유행한 18세기와 다른 새로운 '고백 방식'이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 게다.

이후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건 잘 알려져 있듯 일본 제과회사들이다. 특히 1958년 모리나가제과가 벌인 초콜릿 사랑고백 캠페인이 1970년대 이후 다시 인기를 모으면서 1980년대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21세기 초콜릿은 사랑 고백용으로만 쓰이진 않는다. 직장상사나 동료에겐 의리 초콜릿, 신세 진 사람에겐 감사 초콜릿, 동성 친구에겐 벗 초콜릿도 보낸다.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가 됐다.

■ 늦게 배운 초콜릿? 스위스인들 가장 많이 먹어

유럽에서 가장 늦게 초콜릿이 유입된 나라는 스위스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초콜릿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꼽힌다. 특유의 삼각형 모양으로 잘 알려진 토블론은 스위스 밀크초콜릿의 베스트셀러. 1908년 꿀과 아몬드 계란흰자로 만든 이탈리아식 과자인 토로네를 초콜릿에 섞어 처음 만들어졌다.

과거 유럽인들은 벨기에와 독일을 오가는 열차를 '프랄린 익스프레스'라고도 불렀다. 독일인들이 벨기에의 프랄린 초콜릿을 하도 많이 사간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전통적인 프嗤걋?커다란 동 냄비에 견과류와 설탕을 넣고 40분 정도 계속 저으며 불에서 익힌 다음 식혀서 곱게 빻아 카카오 반죽과 섞어 만든다.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초콜릿으로 유명한 프랑스는 법으로 저급 초콜릿의 유통을 막는 등 정부가 나서서 초콜릿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초콜릿 명가가 즐비한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왕실에 공급되는 초콜릿은 피스톨 사뵈르. 왕실 납품 업체임을 증명하는 금장이 박혀 있다.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은 초콜릿회사 캐드버리의 공장에서 영감을 얻어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썼다고 알려졌다. 영국인들은 단맛을 좋아한다. 그만큼 영국산 초콜릿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 있다. 유럽에서 소비되는 초콜릿 바의 70%가 영국인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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