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부에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미 육군 장교회 소속 무관들의 부인 20여명을 집으로 초청해 오찬을 했는데, 이들이 예쁘게 포장한 꾸러미에서 풀어낸 선물들이 걸작이라는 것이다. 냅킨 수첩 액자 앨범 볼펜 열쇠고리 등, 값으로 따지면 하나같이 1, 2달러 내외 짜리라는 것이다.
남편들이 영관급에서 3성 장군까지 고위층임에도 부인들의 선물은 지극히 평범한 것을 보고 새삼 "역시 미국사회는 다르구나"고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작은 선물에서 따뜻하고 사심 없는 마음이 전해져 고맙고 정겨웠다"며 "초등학교 애들이 있는 집에 다시 선물로 줘야겠다"고 말했다.
봉투 안 주면 창피당하는 한국
초등학생 둘째 딸의 미혼 여자 담임교사한테 20달러 정도하는 목도리를 선물한 적이 있다. 이 교사는 다음날부터 거의 일주일 내내 목도리를 하고 나오면서 딸한테 연신 "땡큐"를 연발해 선물한 아내가 오히려 민망해하던 기억이 있다.
감사의 마음을 조그만 선물에 담아 전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생활화돼 있다. 문 앞의 눈을 쓸어주거나 우편물을 대신 우체통에 넣어주는 조그만 수고에도 어김없이 문고리에 작은 선물봉지를 걸어준다. 선물이 비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 선물은 마음의 징표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선물 얘기를 꺼낸 건 며칠 전 서울 처제의 하소연 때문이다.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우연히 담임교사를 만나 교실로 들어갔는데, 교사가 굳이 양쪽 교실문을 닫더라는 것이다. 나중에 집에 와서 뒤늦게 이유를 알고는 얼굴이 화끈거려 다음날 다시 찾아가 봉투를 주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 교사들은 돈을 안받는다는데 정말이냐"고 물어왔다.
연일 한국에서 날아드는 교육비리 뉴스에 참담하다 못해 서글프다. 잠시나마 그런 교육현장을 떠나 있는 게 다행으로 여겨지면서도 곧 돌아가야 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하지만
낯 뜨거울 뿐이다. 그가 대통령 되고 난 뒤 한 말 중에 가장 설익은 것이 바로 한국 교육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조금 있으면 미국에도 '스승의 날'이 온다. 5월 초 'Teaching appreciation week'가 있는데, 우리말로는 '선생님에게 감사의 마음 전하기' 정도이다. 1주일의 기념주간 중 하루를 'Teaching appreciation day'로 부른다. 이 때가 되면 학교는 떠들썩해진다. 음악회, 운동 경기, 음료수 파티가 열리고,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작은 선물로 마음 전하는 미국
선생님에게 선물한 갖가지 창의적 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좋은 것은 진열해 놓기도 한다. 선물하기 좋은 물건을 추천하는 인터넷 광고나 전단지도 홍수를 이룬다. 선물하는 것에 조금의 부담감도 거리낌도 없다. 그러나 한국의 '스승의 날' 하면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뭔가를 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20달러는 한국에서는 돈 봉투 보낼 때 같이 보내는 꽃바구니나 과일상자 값도 안되지만 미국에서는 큰 돈이다. 미국인 교사가 한국 부모로부터 100달러 지폐를 받고는 놀래서 교장한테 보고하는 등 난리가 났었다는 얘기를 이웃 한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촌지와 선물의 차이, 한국 교육과 미국 교육의 차이일 것이다.
황유석 워싱턴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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