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한명숙 전 총리의 2차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은 하루 종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밤 11시까지 계속됐다. 긴 시간 동안 검찰, 변호인은 오락가락하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입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횡설수설하는 곽씨 진술에 재판부도 황당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검찰이 다소 유리해 보였다. 검찰은 2002년 8월 한 전 총리가 여성부 장관일 때 곽씨가 998만원어치 골프장비를 선물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곽씨와 친하지 않다는 한 전 총리 진술의 허위성을 입증하려는 검찰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오후 들어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2004년 총선 때 한 전 총리에게 선거자금 1,000만원을 지원하지 않았느냐"는 검찰 질문에 곽씨는 "돈을 줬는지, 내가 썼는지, 회사에 반납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곽씨 증언이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 당시) 오찬이 끝나고 주머니에 있던 돈 봉투를 밥 먹은 의자에 놓고 나왔고, 한 전 총리가 (돈 봉투를) 봤는지는 모른다"는 데 이르자 법정 안은 숨죽인 듯 조용해졌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재판부가 "오찬 당시 상황을 자세히 말해 보라"며 직접 심문에 들어갔다.
곽씨는 "오찬을 마치고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참석자들이) 나가면서 내가 조금 늦게 나왔다"고 말했다. 곽씨는 검찰에서 "오찬이 끝난 후 다른 참석자들이 먼저 나가고 한 전 총리와 (자신) 둘만 남아 있었다"고 진술했었다. 재판부가 이어 "돈 봉투를 한 전 총리에게 보여줬느냐"고 묻자 곽씨는 "그걸 어떻게 보여주느냐. 의자에 둔 채로 그냥 나왔다. 한 전 총리가 돈을 챙겼는지는 알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뇌물 공여의 가장 유력한 증거로 평가되는 곽씨의 진술이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가 담긴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과 차이를 보임에 따라 검찰의 유죄 입증에 난관이 생겼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 변호인 측은 "이는 사실상 진술번복에 해당되며 무리한 검찰 수사의 단면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법원 관계자는 "공소장에서 A가 B에게 '돈을 건네주었다'는 것의 법률상 의미는 A, B가 서로 인지하는 상황에서 직접 돈을 전달했다는 것"이라며 "곽씨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진 느낌"이라고 평했다.
곽씨는 또 예상 외의 돌출성 답변으로 법정을 술렁이게 했다. 한 전 총리에 관한 진술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선 "몸이 아픈데 검찰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고, 밤12시까지 면담을 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답해 검찰을 당황하게 했다. 재판부가 캐묻자 "변호인도 대동하지 않았고, 면담이 새벽 1~2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검찰은 강압수사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곽씨의 구치소 출입기록을 제출하기로 했다. 현행법상 자정 이후 조사에 대한 금지 규정은 없지만 인권침해라는 지적 때문에 제한하고 있다. 검찰은 또 곽씨가 "(조사과정에서) 검사가 전주고 출신을 모두 대라고 물었다"고 진술하자 "표현은 정확해야 한다. (금품을 받은 사람 중) 전주고 나온 사람도 많이 있지 않냐고 물은 것"이라며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오후9시30분부터 진행된 변호인 심문에서 곽씨는 "(오찬 자리에서)잘부탁한다는 말은 나를 특정해서 한 말이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당시 산업자원부장관)에게 한 전 총리가 직접 이야기한 것"이라며 오전 진술을 다시 번복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변호인 심문을 두 시간 동안 진행한 뒤 12일 오전 10시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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