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암센터들이 잇달아 새로운 차원의 환자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암 환자들은 하루하루 목숨을 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병원들이 앞다퉈 환자들의 몸뿐만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환자 외모관리 프로그램 도입
각 병원 암센터에서 제공하던 환자 서비스 프로그램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었다. 기껏해야 질환별 식이요법이나 수술 후 관리요령을 알려주는 강좌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암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즉각 도움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삼성서울병원 삼성암센터는 암 치료에 따른 외모 변화로 자신감을 잃는 환자들을 위해 외모 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방사선 치료로 인한 탈모를 감추는 두건과 가발 활용법을 비롯, 피부를 화사하게 보이는 메이크업과 의상 활용법 등을 알려준다. 각 분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진행하므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강좌는 매주 화요일 삼성암센터 지하 4층 세미나실에서 4주에 걸쳐 진행되며 사전 전화 예약을 통해 접수를 받는다. 이 강좌를 수강한 한 환자는 “암 진단 후 처음으로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암센터는 암 환자를 위한 뷰티클리닉을 열고 주 1회 피부과 전문의와 외부 전문가 등의 도움을 받아 피부관리와 색조화장, 두피 관리, 두건ㆍ가발 활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뷰티케어샵도 유방암 환자를 위해 인조 유방 상담실과 가발 샴푸실을 운영하고 있다.
노래교실·명상·웃음치료도
암 환자의 90%가 방사선 치료, 골수 이식 등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고 30~75%의 환자들에게서 이 피로감이 지속된다. 치료로 인한 피로감은 단순히 신체 피로나 스트레스로 끝나지 않는다. 암 환자의 삶의 의지를 꺾고 전반적인 건강상태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각 병원 암센터들은 환자들의 치료의지를 북돋우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는 암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해 그 결과를 토대로 노래교실과 명상, 웃음치료, 손발마사지 등 5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병원 이대호 암센터 삶의 질 향상팀장은 “처음에는 입원환자들을 위해 개설했으나 이제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외래환자들이 일부러 찾아서 내원할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암 환자들은 각자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규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매주 노래교실에 남편과 함께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한 암 환자는 “암 치료 중 집에만 있을 때에는 너무 우울했는데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교실에는 김해에서 4시간씩 걸리는 장정을 마다 않는 환자도 있고, 명상강좌에는 의정부나 안산에서 새벽같이 달려오는 환자도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암 진단을 받은 뒤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암센터 내에 스트레스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치료과정에서 자신을 잘 통제하지 못하면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1:1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통해 이른 시간 내에 환자들이 건강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세브란스병원 암센터는 운동요법에 관심이 있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주 1회 연세대 체육학과 교수의 지도 하에 라인댄스와 코어 운동, 집에서 할 수 있는 맞춤 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팀을 구성해 참여자들의 관계 형성을 도와줌으로써 치료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이 밖에 미술치료와 음악치료, 웃음치료 등을 개설하고 해당 분야 전문강사의 지도 하에 환자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도록 돕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우울증이 심한 암 환자에게 정신과 전문의가 직접 병실을 찾아가 환자를 상담하고 우울증 처방을 해준다. 또한 연극으로 환자의 불안과 고통을 해소해주는 연극치료 프로그램인‘연극치유로 만나는 세상’은 다른 병원에 입원한 암 환자가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 만나는 암 환자끼리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시작되는 이 프로그램은 진솔한 대화를 통해 환자들의 응어리를 푸는 방식이다.
암환자 전용 메뉴 개발
고객 만족을 위한 각 병원의 행보도 분주하다. 세브란스병원 암센터는 암 환자들의 삶의 질과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 각종 병원과 요양기관을 벤치마킹해 모두 45가지의 환자식 메뉴를 개발했다. 특히 식욕과 소화기능이 떨어져 한 번에 많은 양을 먹기 어려운 암 환자 특성에 맞게 1일 3회 식사에서 1일 6회 식사로 횟수를 늘려 칼로리를 繹瑾?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정현철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은 “입원환자들의 영양상태를 분석한 결과, 10% 정도의 환자에게서 영양 불균형이 나왔고 이 가운데 75%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암 환자여서 암 환자용 메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화의료원은 지난 4일 남녀 공동병동에서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여성 암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해 여성 전용 ‘레이디병동’을 신설했다. 병원 4층에 마련된 레이디병동에는 총 93개의 병실이 운영되고 있다. 5인실과 6인실 등 다인실에서 TV를 없애 TV 채널 선택권을 둘러싼 환자들 간 다툼을 예방하고 입원실에서 겪어야 했던 소음을 대폭 줄였다. 대신 병동 내에 다목적실을 두어 환자나 보호자들이 TV 시청이나 인터넷 이용, 음악 치료, 상담,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1인실뿐만 아니라 5인실에도 화장실과 샤워 시설을 마련했다. 서현숙 이화의료원장은 “레이디 병동의 모든 시설과 서비스는 환자가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철저히 환자 눈높이에서 맞춰 꾸몄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도 관리
암을 진단받으면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스트레스는 치료과정에 대한 현실적인 걱정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극심한 우울증과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 서울대병원에서는 함봉진 교수를 필두로 정신과가 암 환자와 보호자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보호자 교육프로그램과 함께 환자 스트레스 경감 프로그램 운영함으로써 암 환자와 보호자가 스트레스를 관리해 질적으로 보다 나은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암센터에서는 환자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서포터즈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정현철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은 “보호자들간 친밀감을 형성하고 가족들의 삶의 질을 높이며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증을 해소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신체 이완법으로 신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환자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우도록 한다. 또한 신체 스트레스 극복 사례를 공개해 각자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지 확인하며, 불안과 우울 등 심리적 스트레스 감소를 위해 상황극을 공연하기도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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