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 단원 7명이 승용차 한 대를 완전히 분해하는 데 걸리는 최소 시간은? 1분.
드릴 한 번 제대로 쥐어본 적 없는 배우들이 폐차장 인부로 변신했다. 8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주차장은 난장판이었다. 망치로 차체를 두들기는 소리와 주기적으로 드릴을 작동하는 소리, 한일 월드컵 당시 응원 풍경을 방불케 하는 경적 소리, 드럼 스틱으로 본네트를 때리는 소리…. 이들이 이뤄내는 16박에 취한 지 3분여가 흐르자 폐차 직전에 놓인 파란색 경차 한 대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비언어극 '비트'에서 폐차장의 일상을 묘사한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언어극 '난타'와 '점프'를 연출한 최철기(37ㆍ페르소나 프로덕션 대표)의 신작 '비트'의 배경은 폐차장이다. 무대 위에는 분해될 경차 한 대와 오픈카 모형이 등장한다. 가볍고 질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모형차는 인기 록밴드 멤버들이 타던 애마로, 이들이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폐차장 신세를 지게 됐다. 작품은 이 차에 사는 록밴드 유령들과 폐차하려는 인부들 사이에 벌어지는 소동을 왁자지껄 그린다.
악기는 차 부품과 이를 리모델링한 낯선 기구들이 대신한다. 이를테면 베이스는 필터에 동그란 북을 넣어서 만들었고, 바퀴 축인 쇼바를 크기별로 잘라 붙여 실로폰 소리를 냈다. 핸들과 머플러, 파워펌프 등도 악기로 탈바꿈했다.
수제 악기를 한 대 만드는 데는 평균 20일이 걸렸다. 제작팀은 예쁜 소리를 찾아 두드린 차량이 수백 대, 부순 것만 129대라고 설명했다. 조연출 전주우는 차량을 공급해줄 폐차장을 찾는 데 한 달을 쏟았다. 이렇게 탄생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폐차 악기 세트는 설치미술과도 흡사한 모습이다.
타악기 위주 음악의 빈 틈은 드럼, 기타, 베이스, 건반을 연주하는 록밴드 유령들이 채운다. 심장 소리를 닮은 두드림에 폭발적인 밴드 음악, 록 넘버까지. 무대는 갖가지 소리로 충만하다.
드라마 '아이리스'에 참여한 이동준이가 음악감독을 맡고, '점프' 배우 출신 김철무, 윤정열이 각각 코미디 연출과 무술 지도를 맡았다. 예술단은 차후 수정을 거쳐 수익성 있는 레퍼토리 공연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이영규, 고석진, 장성희 등 출연. 26일~4월 4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01-7888
■ '난타'의 타악 '점프'의 마샬아츠 총집합한 작품
연출가 최철기은 3년 전부터 폐차장 배경의 '비트'를 구상했다. 그는 "비언어극의 웬만한 소재는 다 나왔지만 폐차를 직접 두들긴 공연은 없었다"면서 "비트는 '난타'의 타악과 '점프'의 아크로바틱, 마샬아츠가 총집합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인지 준비 과정은 유난히 더디고 힘들었다고 했다.
연습을 시작한 지 이제 6개월. 그는 "예술단 배우들이 악기 연주나 코미디 연기 등 생소한 분야도 너무 열심히 연습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 서커스 지도위원을 불러 2개월 간 서커스 훈련을 시켰는데, 배우의 습득력이 좋아 스카우트하고 싶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연습실을 공개하지 않고 작품을 비밀에 부쳤다. "내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 해외 진출도 노리고 있어요. 기대해도 좋습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