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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꽃샘잎샘 속의 꽃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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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꽃샘잎샘 속의 꽃잠

입력
2010.03.1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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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는 '꽃이 필 무렵의 추위'를 가리키는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이다. 추위를 비유하는 말인 한파, 동장군, 혹한에는 몸이 오싹해지지만 꽃샘추위란 말에는 웃음이 살짝 번진다. 그렇다고 꽃샘추위가 만만한 추위는 아니다. '봄추위 장독 깬다'는 옛말이 있듯 봄철에 의외로 사나운 추위가 있다는 자연의 경고다.

은현리 마당에 매화가 활짝 피었는데 꽃샘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멀리 보이는 천성산, 대운산 머리에 흰 눈이 수북하고, 산바람을 맞으니 눈가루가 뼛속으로 스며들듯 차갑다. 텃밭을 손질하다 들어와 벗어버린 내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이런 날씨를 두고 꽃샘추위란 시적인 은유를 남긴 옛사람들이 고맙다.

그 말 속에는 나무가 꽃 피우는 것을 샘을 내서 찾아오는 추위이니 사람은 능히 참고 견딜 수 있다는 따뜻한 격려가 있다. 꽃샘추위 앞에서 가장 뜨거운 것이 나무다. 스스로 뜨겁지 않으면 이 추위 속에 어떻게 꽃을 피워내겠는가. 잎을 달겠는가. 꽃샘추위와 비슷한 우리말에 '꽃샘잎샘'이란 말이 있다.

꽃과 잎이 필 무렵의 추위를 말한다. 추워서 할 일이 없을 땐 사전을 뒤져 정겨운 말을 찾아본다. '꽃잠'이란 말이 있다. '신랑 신부의 첫날 밤의 잠'이 꽃잠이고 '깊이 든 잠'도 꽃잠이다. 꽃샘잎샘에 눈까지 내리는 날, 장작 군불을 때고 아랫목에서 꽃잠이나 쿨쿨 자야겠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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