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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정가악회 음악극 '왕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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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정가악회 음악극 '왕모래'

입력
2010.03.1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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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과 낭송으로 재탄생한 황순원의 소설

2007년 KBS 성우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받은 이선씨가 무대 뒷켠 가운데에 앉아 소설을 잔잔히 낭송해 갔다. 정가악회 단원들은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때로 연기도 하면서 황순원의 소설 '왕모래'를 노래했다. 여기에 가운데 영사막으로는 동양화적 영상이, 좌우로는 한글과 영어 자막이 무대를 따라잡아 갔다.

국악 연주단체 정가악회가 3~6일 강남의 LIG아트홀에서 펼친 음악극 '왕모래' 공연 현장은 지난해 7월 페루의 잉카가르실라르 대학에서 가졌던 초연 무대의 성공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연출자는 이번 공연이 그리 탐탁지 않은 듯 했다. 공연 기간 중 추리닝 차림으로 분주히 공연장 안팎을 오가던 연출자 임형택씨는 "언어가 진정한 이해에 방해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페루에서 할 때가 더욱 좋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3D도 모자라 4D까지, 시각 매체의 과잉 친절에 길들여진 한국인의 인지 기능은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대는 극히 현대적이다. 객석을 향해 부채꼴로 펼쳐진 무대 뒷켠에 정가악회 단원이 4명씩 두 줄로 나뉘어 가야금, 해금, 대금, 생황, 양금 등 8종의 국악기를 연주해 간다. 정갈하게 구획된 무대에서는 이 시대 눈으로 봤을 때, 차라리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극도의 가난과 모친의 불륜, 그 틈새에 끼어든 환각의 유혹이란 소재에 모친 살해라는 모티브까지 가세한 이 작품은 원작소설이 나온 1954년은 물론, 현재의 시선으로 봐도 충격적이다.

연출자의 아쉬움은 서사와 무대 미학의 괴리를 반영한다. 그의 극단 서울공장은 '두 메데아'나 '논쟁' 등 나신 연기까지 불사하는 무대 어법으로 마니아를 몰고 다니는 단체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 앞서 기획팀은 "모친 살해 대목은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부정교합을 겪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무대는 주제적 측면을 벗어나, '낭독의 재발견'으로 읽을 때 그 의미가 살아난다. 낭독은 이 시대 인문학적 성찰의 방식이다. 배우들에게는 낭독이 대본 읽기라는 방식으로 일찍이 습득돼 있다. 최근 배우들에 의한 희곡 읽기가 하나의 무대로까지 승화한 것은 연극 배우들의 뛰어난 읽기 능력에 착목한 예다. 낭독 음악극 '왕모래'는 그 같은 리딩(reading) 작업의 정점에 있다.

정가악회는 낭독을 재발견했고, 강남 빌딩 디지털 숲 속의 공연장 LIG아트홀에 새 기운을 불어넣었다. 인디밴드 '어어부프로젝트'의 장영규씨가 담당한 음악은 정가악회 악사들을 만나, 정악과 속악을 넘나들며 한의 정서를 토해냈다. 음악만으로도 일대 향연이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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