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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마을이 죽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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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마을이 죽으면

입력
2010.03.1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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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 중학생으로 표기되지만 중학교도 가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다는 생각에 설?을 어린 소녀였다. 실종 11일 만에 이웃의 폐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통령이 나서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범인을 잡으라"고 하고 국회의장 역시 같은 내용으로 부산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지만 어이없는 일이다.

'여학생 피살' 뒤편을 잘 보길

경찰을 치안이 아닌 공안 인력으로 활용한 것이 이 정부이고,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을 방치한 국회가 아닌가. 어른들이 제 역할을 안 하는 사이에 어린이들이 사는 현실은 안양의 초등학생 두 명이 처참하게 살해된 2008년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에게나 부유한 이들에게나 치안은 사라졌는데 그나마 부자 동네는 폐쇄회로 감시망(CCTV)이 있지만 가난한 동네는 그조차 없다.

사건을 계기로 전자발찌제도가 생기기 전에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전자발찌를 착용토록 해야 하며 성범죄자는 재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상 공개를 확대하자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옳은 말이고 당연히 실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안도 초범을 막지는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마을이, 공동체가 무너지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속담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정말 맞는 말이다. 초등학생인 어린이는 어떤 시간에도 혼자 있어서는 안되며 어른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나 가난한 어머니들은 생계를 위해 집을 비워야 하는 처지이니 이웃의 누군가가 돌봐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 동네는 아이를 돌볼 이웃이 드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빨리 무너지라고 구조적으로 방치되는 곳이다.

이양이 살던 부산 사상구 덕포1동은 재개발 예정지이다. 2005년에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후 2006년에는 사업시행인가도 받았다. 그러나 주민들간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재개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곳의 재개발도 전국의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재개발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단독주택지를 허물고 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 방식은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유용하겠지만 이 동네에 사는 가난한 토박이들한테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억 단위 부담금이 없으면 평생을 몸 붙여 살던 스무평 남짓한 주거지를 떠나야 한다. 그러니 재개발이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 재개발을 하겠다는 이들은 밀어붙이고,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저항하지만 쉽지 않다. 재개발 지역으로 공고가 되면 집을 고치는 것도, 사고 파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니 동네는 점점 더 슬럼이 되어 간다. 결국 못 이기고 토박이들이 떠나면 집들은 부서지고 아파트가 건설된다. 그 아파트에 살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현재 전국에서 이뤄지는 아파트 미분양 사태를 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도 전국에서 이런 재개발이 강행되고 마을이 붕괴되어 간다.

이양이 살던 동네만 해도 2005년에는 1,168세대가 거주하던 곳이 2009년 말에는 500세대가 이주해서 이제는 668세대만 남았다(부산경찰청 자료). 곳곳에 빈 집이 넘쳐난다. 부산의 단독주택 평균 지가가 평당 370만원인데 달동네인 이곳이 345만원(부동산협회 집계 다음부동산 출전)이라는 것은 이 지역이 투기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부산경찰청은 CCTV를 언급하지만, 재개발 지역이라는 것은 헐릴 동네라는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실제로 설치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두고 볼 양이다. 말치레가 되기 십상이다. 자력으로 경비할 수 없는 가난한 동네라면 더욱더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린이 뿐아니라 모든 주민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마을 공동체를 살릴 수 있어야

이번 사건으로 어린이 성범죄를 막는 방안이 논의만 무성하다가 실행이 되지 않는 단계를 뛰어넘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을이 죽어가는, 공동체가 사라져가는 이 개발지상주의를 끝내야 한다. 4대강에 쏟아 부을 돈이 있다면 전국의 달동네에 주택기금을 지원해서 아무 어른이나 마구 들어올 수 없는, 작지만 튼튼한 집을 새로 짓고 가로등이 환한 골목길을 비추는, 그런 동네를 만들어줄 수는 없는가.

서화숙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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