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의 3년상을 치르고 나서 쓰기 시작한 소설입니다. 2005년 고비사막에 있는 흉노족의 암각화를 보고 돌아온 뒤 아들에게 함께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죠. 아들이 그리 되기 1주일 전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라도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가 정도상(50)씨의 새 장편 <낙타> (문학동네 발행)는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애통함으로 절절하다. 2005년 11월, 화가를 꿈꾸던 중학교 2학년이던 정씨의 큰 아들은 ‘단테의 신곡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당시 아들은 미술입시학원을 다니면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 고민했다고 한다. 낙타>
“아이에게 그랬죠. 암각화를 보러 가자, 몇천 년의 세월을 견뎌내는 예술을 직접 확인해보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정씨는 소설에서 복효근 시인의 시구를 빌어 “옆구리에 절벽 하나가 만들어졌다”고 표현했다. 낭떠러지 같은 슬픔을 안고 정씨는 재작년 다시 고비사막을 횡단하며 <낙타> 를 구상했고,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가량 작품을 인터넷에 연재했다. 낙타>
소설은 3년 전 아들을 잃은 주인공이 아들 규의 영혼과 함께 고비사막을 건너 옛 흉노족이 남긴 암각화가 있는 테비시 산까지 동행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꿈에도 그리던 아들의 영혼과 재회한 주인공은 아들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알고자 애쓰지만, 규에게선 서늘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자기가 행복하면 다른 사람도 행복한가 뭐? 그건 아니라고 봐.”(187쪽) 아비는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자부했지만, 아들 역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자였을 뿐. 사막에서 만난 주술사는 주인공의 미망을 호되게 꾸짖는다. “너는 어제로 가는 말을 타고 있도다. 어리석은 자여, 착각하였구나. 어떤 말도 어제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도다.”(157쪽)
사막 여행은 주인공에게 아들을 온전히 하늘로 보내는 이별 의식이자, 스스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려는 전환의 시간이다. 궁핍한 집안의 장남, 운동권 대학생을 거쳐 작가로 살아온 그는 “나는 내가 슬펐다”(218쪽)는 말로 자신의 과거를 강하게 부정한다. “생활과 작품과 상상력의 상투성에 사로잡혀 옆구리의 절벽만 자꾸 높였다. 차라리 절벽 끝에서 아득한 낭떠러지를 향해 몸을 던져야만 했었다. 그리고 손톱을 세워 절벽을 긁으며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것이었다.”(218쪽) “(아빠 소설은) 너무 무겁고 진지해. 읽다가 지쳐. 그게 아빠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어”(187쪽)라며, 아비를 지당한 말만 하는 ‘지당도사’라고 부르는 아들의 일침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주인공의 독한 쇄신 의지는 올해로 등단 23년을 맞은 작가 정씨의 다짐이기도 하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여행한다는 환상적 설정, 고대 흉노족이나 사막의 주술사를 등장시키는 신화적 상상력 등 이번 소설의 특징은 사회구조적 폭력이나 분단ㆍ통일 문제 등을 정통 리얼리즘 기법으로 다뤄온 그의 이전 작품들과 확실히 결별하고 있다. 예컨대 주인공의 옛 친구 숙자는 인터넷 연재 당시만 해도 공장 노동운동가로 묘사됐지만 책에선 가난, 사고로 인한 장애, 공장 동료였던 연인의 배신 등을 이겨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운동과 무관한 인물로 탈바꿈했다.
정씨는 “등단부터 탈북 여성의 수난을 그린 최근작 <찔레꽃> (2008)에 이르기까지 역사의식, 민족의식의 과잉 속에 살아온 것 같다”며 “이번 소설의 숙자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고 사실적으로 바라보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50대 남성과 30대 여성이 등장하는, 얇은 유리잔처럼 취약하고 허망한 사랑의 속성을 보여주는 연애소설을 차기작으로 구상 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찔레꽃>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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