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생부터 2003년생까지. 대한민국에서 이 연령대는 ‘초딩’이라는 시쳇말로 통칭된다. ‘어린이’라는 오래된 보통명사로는, 모르는 게 생기면 ‘지식iN’에 묻고 미니홈피로 교우관계를 맺는 이 신인류를 칭하기에 이격감이 크다. 계간 ‘창비어린이’ 봄호는 이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을 파고들어 ‘新초딩풍속도’를 특집으로 꾸렸다.
▦핸드폰, 아이들의 가상 탯줄
초딩을 과거의 어린이들과 극명하게 갈라놓는 것은 핸드폰이라는 도구다. 정신과 전문의 조중근 박사는 “핸드폰은 초딩들의 첫번째 생존 전략이다. 21세기 초딩들의 급소는 몸에 있지 않다. 어린이들에게 첫번째 기관은 첨단 과학에 의해 이식된 장기, 핸드폰”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압축된 문자로 쉼없이 소통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첨단 과학과 심리학의 만남을 읽는다.
“짤막한 글로 가슴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갈등의 시작을 알리기도 하는 그 분주한 손놀림. 최대한 빨리 한두 단어에 감정을 함축적으로 실어내는 능력. 그들이 반드시 숙달해야 할 21세기 사회기술이다. 문자 메시지에 답해야 하나 ‘씹어야’ 하나를 판단하는 능력 또한 필수다. 그 순발력이 없다면 ‘찌질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 박사는 그러나 이런 ‘고난도 게임’이 초딩에게는 무리한 심리 게임이라고 말한다. “손가락은 빠르고도 정확하게 움직이지만 그들의 인격은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다.
이동후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핸드폰이 “초딩들이 가족과 물리적으로 함께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제3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에 존재하는, ‘함께하면서도 부재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공간이나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초딩들은 일찌감치 독립성을 경험하는 반면, 전통적인 사회화 과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우려다.
▦인터넷 키드, 떠나고 떠돌고 사라지는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부터 우리 시대 초딩의 실존을 함축한 알레고리를 추출한다. ‘하멜른의…’는 사라지는 아이들에 대한 어른의 불안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고전. 김 교수는 인터넷의 세례를 받고 자란 초딩들을 “세상에 늘 위험스럽게, 사랑스럽게, 신비롭게 존재해 왔던 ‘떠나는 아이, 떠도는 아이, 사라지는 아이’의 21세기판”이라고 규정한다.
김 교수는 “디지털 세대가 혁신된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어른들의 불우한 희망이 있지만, 인터넷 중독이나 사이버 범죄 같은 단어들이 표상하듯 인터넷에 매료된 아이들은 폐인이 되어 영영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걱정이 존재한다”며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가상성의 존재론적 모순은 실제라는 소실점에 가까워지기를 처절하게 바라지만, 그런 외양을 지니게 될수록 실제성을 가장하기 위한 복잡하고 정교한 인위적 프로그램에 포박당하는 사실에 있다. 실제라고 느낄수록 그것은 실제로부터 멀어지며, 인터넷 아이들이 겪는 세계 또한 그러하다.”
김 교수는 “(과거의 아이들이) 고독하되 대담한 삶의 여행에 진지하고 용감하게 들어섰다면, 오늘날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떠나 그 공간을 떠돌고 때로는 사라지며 자신의 삶의 궤적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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