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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올림픽과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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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올림픽과 메달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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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동계올림픽의 한국 선수단 성적이 올림픽 폐막 1주일이 지나도록 일본에서 회자되고 있다. 한국은 금메달 6개 등 14개의 메달을 따내는 좋은 성적을 거둔 데 반해 아시아의 스포츠 선진국으로 자부해온 일본은 '노 골드' 메달 5개에 그쳤기 때문이다.

메달지상주의 키운 국가주의

올림픽 폐막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일본선수단장은 선수 숫자가 일본의 절반에 불과했던 한국이 종합 5위 성적을 낸 데 대해 "소수정예의 안정감에 압도됐다"며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어떤 전략을 세우면 작은 체구로도 분투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생각할 좋은 기회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단장은 귀국 보고에서도 하토야마(鳩山) 총리에게 거국적인 태세로 14개의 메달을 따낸 한국의 활약을 모범으로 삼은 정부의 충실한 지원을 요청했다.

동계올림픽 결과를 반영해 스포츠 진흥책을 마련 중인 문부과학성은 담당 공무원들을 한국에 보내 스포츠 체계 전반을 견학할 계획까지 짰다고 한다. 한국 정부의 스포츠 지원 현장을 보고 배우겠다는 뜻이다. 일본 언론 역시 연일 국가대표 선수의 연간 훈련강화비가 일본은 27억엔 정도에 불과한데 한국, 중국은 100억엔을 넘는다며 국가 지원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쾌거에 놀라면서 어떻게든 만회해야 한다는 투지에 불타는 모습이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처럼 메달 숫자에 연연하는 사고방식에는 경계해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메달지상주의'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올림픽 기간 중 이시하라(石原) 도쿄(東京)도지사의 발언 같은 것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하라 지사는 지난달 25일 일본의 동계 올림픽 성적에 대한 일본 내 반응에 대해 "동메달을 따고 미친 듯이 기뻐하는 이런 바보 같은 나라는 없다"며 "국가라는 무게를 짊어지지 않은 인간이 빨리 달릴 리 없고, 높이 뛰어 오를 수 없다. 좋은 성적을 낼 리 없다"고 비난했다.

이시하라 지사는 다음 날도 일본 선수들의 올림픽 성적에 대해 "더 이상 불쌍해서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저게 일본의 실력이다"고 말했다. 일본 전체가 반겼던 여자 피겨스케이팅 아사다 마오(淺田眞央) 선수의 은메달에는 "유감스러워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런 메달지상주의자에게 올림픽은 일류 선수의 기량을 보고 즐기는 흥미진진하고 선의에 넘치는 스포츠, 국제 외교의 장이 아니다. 국가의 명예를 걸고 경쟁국을 반드시 이겨 금메달을 따내야 하는 전장(戰場)에 다름 아니다.

학교ㆍ사회체육 강화 눈돌려야

메달 지상주의에서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오로지 메달 획득에만 '올인'하는 엘리트 체육 우선 정책이다. 공교롭게도 동계 올림픽이 끝날 즈음 학교체육법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엘리트 선수 육성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한국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준다. 법안은 "엘리트 체육은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기인한 비교육적ㆍ반인권적 훈련 문화와 학생 선수의 학습권 및 인권침해로 존립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며 학생 전체의 건강한 스포츠 활동을 증진하기 위한 예산 편성과 제도 마련을 의무화했다.

동계 올림픽을 통해 한국의 국가 위상이 한 단계 성큼 오른 듯한 뿌듯함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느낄 터이다. 그런 자부심을 바탕으로 이제는 메달 못지않게 학교ㆍ사회체육을 더 강화하고 성숙한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도 적극적으로 투자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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