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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올드보이가 뛴다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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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득철(56) 전 전북은행 부행장은 올들어 '증권맨'으로 변신했다. 30년간 일한 은행에서 지난 2008년 은퇴한 그가 '영업고문'이란 직함을 달고 하나대투증권에 일하게 된 것.

양 고문은 "은행 근무 당시부터 알던 고객들을 만나 금융상품을 소개하고 자산관리 상담을 하는 게 하루 일과"라며 "요즘 고객들을 만나 실적 올리는 재미에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고 말한다.

직업수명이 짧기로 유명한 증권업계에서 '올드 보이'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7일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이 회사는 증권사, 은행, 보험사 등에서 20~30년 근무경력이 있는 은퇴 금융인 9명을 영업고문으로 공개 채용했다. 신입 영업고문의 평균 연령은 58세. 대부분 금융기관 임원 출신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름만 걸어놓은 고문이 아니라 직접 개인과 법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현장형'고문이다. 기본 보수는 있지만 영업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받게 되어 있는데, 대략 퇴직전 급여의 50~80%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봉이 가장 높기로 유명한 금융기관 임원출신인 만큼, 이들이 지금 벌어들이는 돈은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인 셈이다.

증권사들이 은퇴 금융인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의 연륜과 인맥을 영업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 일부 증권사들이 알음알음으로 퇴직한 베테랑 금융인을 영업고문으로 채용해왔지만, 공채까지 실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을 채용한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증권사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인력"이라며 "폭넓은 금융지식과 오랜 경험, 넓은 인맥을 가진 퇴직 금융인들이야말로 증권사 영업력 확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증권업계는 40대 중반에 이르면 '제2의 인생'을 찾아나서야 할 정도로 직업 수명이 짧다. '증권가의 꽃' 애널리스트들은 40대 초반이면 거의 퇴직하고, 일선 영업현장의 수장격인 지점장들도 대개 40대 중반이다. 이런 업계 풍토에서 50대 '올드 보이'들의 활약은 매우 낯선 풍경이다.

그러나 혈기 왕성한 젊은이와는 다른 장점이 있다. 20~30년 현장에서 갈고 쌓은 경험과 인맥, 고객을 대하는 기술은 영업에 가장 필요한 자산 등이다. 특히 50대 금융 베테랑들의 인적 네트워크야말로 증권사들이 가장 탐내는 자산이다.

드림자산운용 부사장을 지낸 이성원(59) 하나대투 영업고문은 "하루 3~4명씩 만나도 1년 안에 다 못 만날 정도로 인맥이 많다"며 "인맥을 활용해 실적을 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월초 입사한 하나대투증권의 영업고문 4명은 지난 2달간 각각 200억~300억원씩의 자금을 유치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50~60대는 보유 자산이 많을 뿐 아니라 노후 준비를 위해 자산 관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증권사들의 주요한 타깃이 되고 있는데, 동년배인 은퇴 금융인들은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만큼 공략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올드 보이' 영업고문은 자산관리 니즈가 높은 중장년 고객층을 파고들려는 증권사와 퇴직 후 일자리를 구하는 금융 전문가들이 상생하는 '윈-윈 게임'인 셈이다.

남보라 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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