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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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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칸나

입력
2010.03.0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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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다. 제주도의 여름, 현무암 돌담 아래 피어 있던 칸나, 그 붉은 꽃을 본 후로 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늘도 쓰려고 애쓰다가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칸나인 것처럼 쓰고 싶었다. 칸나 속으로 들어가서 칸도 없고 나도 없는 칸나의 마음으로 말이다. 칸나! 칸나는 말의 저편에 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글이 이렇게 갑자기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다. 제주도의 여름, 붉은 칸나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그날, 무슨 일인지 내 혓바닥은 고름들로 퉁퉁 부어올라 있는 상태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나는 칸나를 보고 있었다. 시커먼 화산재들이 치솟고 뜨거운 용암들이 흘러넘치는 한라산 밑에서 나는 꽃 붉은 칸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굳어버린 불의 돌, 현무암, 그 거무스름한 돌담 아래 피어 있던 칸나의 붉은 꽃, 오늘도 칸나에 대해 제대로 쓰지 못한 느낌이 든다. 다음에는 칸나에 대해 더 잘 쓸 수도 있겠지.

이 시를 읽고 나니 갑자기 칸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무슨 그렇게 생긴 꽃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붉은 꽃이네요. 아무래도 직접 봐야지 칸나에 대해서 알 것 같은데, 그러자면 일단 여름이 되어야만 할 것 같고, 여름은 아직 멀고. 더듬더듬 기억을 떠올려보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기도 한 칸나. 결국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어린 시절에 사진을 꽂아두던 앨범이었어요. 다들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잖아요. 사진 앨범들. 그 앨범들은 지금 어디 있는지 궁금하네요. 누군가 다른 사람의 과거처럼 내 과거가 문득 궁금해지네요. 칸나에 대해서 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군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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