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버그먼 지음ㆍ권복규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ㆍ583쪽ㆍ2만5,000원
"가장 힘센 사냥꾼은 콩고의 푸른 밀림 속에 혹은 북극의 얼음 위에 살지 않는다. 우리의 머리 한 귀퉁이, 남성 영혼의 일부로 고정되어 자리잡고 있다."(22쪽)
현생 인류는 농경의 시대보다 훨씬 긴 수렵의 시대를 거쳤다. 대부분 지역에서 사냥은 남성의 역할이었기에 사냥꾼의 이미지에서 남성성을 추출하는 것은 흔한 수사법이다.
이 책은 미국 퍼시픽루터대 영문학 교수가 그리스 신화의 거인 사냥꾼 오리온을 시작으로 서양 문화사 속의 사냥의 흔적을 훑으며 구축한 남성의 역사다.
저자는 사냥이라는 이미지가 남성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남성이 스스로의 존재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방식에 미친 영향을 되짚는다. 사냥을 매개로 신화와 문학, 대중매체를 폭넓게 가로지르며 해박한 지식의 폭을 보여준다.
분방하게 등장하는 인문적 사유에 관한 배경지식이 얕으면 읽기에 숨이 찰 듯도 하다. 군데군데 삽입된 저자의 개인적 체험은 이 책에 에세이의 색채를 더한다.
현대 사회에서 사실상 멸종된 사냥꾼을 은유의 매개로 삼았지만, 이 책은 궁극적으로 현 시대의 남성성에 대한 통찰을 목표로 한다.
현대의 남성이 겪는 고독, 혼란, 정체성의 위기가 저자가 얘기하는 핵심이다. "타자_여성, 짐승, 자연_와의 온전한 교류를 상실하고 그들을 폭력적으로 지배하려는 욕구, 즉 오리온의 원초적 욕구"에 속박당한 채 살아가는 것이 저자가 보는 현대의 남성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원초적 욕구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남성성, 새로운 인간성… 타자에 대한 지배ㆍ피지배 관계를 통해 정립되는 정체성이 아닌, 그 어떤 남성적 정체성"을 애타게 찾는다.
또렷한 해답보다 그 추구의 방향성이 책의 골간을 이룬다. 견고한 가부장제와 급속한 여권 신장에 따라 위축된 남성이 공존하는 한국의 '고독한 사냥꾼'들에게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지는 책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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