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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우리나라의 역사도 외면한 공영방송의 부끄러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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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우리나라의 역사도 외면한 공영방송의 부끄러운 현실

입력
2010.03.0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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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때아닌 청일전쟁, 러일전쟁 논란이란다. NHK가 마련한 특별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 탓이다. NHK는 개항 150주년, 한일병합 100년, 태평양전쟁 70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60년을 맞아 3년 기한의 '프로젝트 재팬'을 선언한 바 있다. 역사물을 제작하겠다는 선언이었고, ‘언덕 위의 구름’은 그 기획의 일환이다.

논란의 중심은 한일병합이었다. ‘언덕 위의 구름’은 청일, 러일전쟁을 일본 방위를 위한 선택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있다. 2011년까지 3년에 걸쳐 방영하면서도 한반도 이야기는 건너뛴다고 한다. 750여억 원을 들였다는 이 13부작 드라마에서 대한제국, 동학혁명을 뺀 채 두 전쟁을 풀어갈 거라 한다.

양식있는 일본의 학자, 시민단체가 발끈하고 나섰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 나카츠카 아키라 나라대 교수는 한반도 침탈을 숨기는 위험한 역사관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식민정책을 사과했던 무라야마 담화와도 어긋난다며 공영방송 NHK가 할 일이 아니라고 문제 삼았다.

‘NHK를 감시하고 격려하는 시청자 코뮤니티’ 대표인 다이고 사토시 도쿄대 교수도 일본 군국주의를 올바로 보지 않았다며 비판에 동참했다.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이 같은 내용이 방영됨에 유감을 표시했다. 앞으로 드라마를 모니터하며 역사 왜곡을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다이고 교수는 NHK 수신료 거부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해 발언의 여파가 만만찮다.

학자, 단체의 개별 행동을 넘어 네트워크 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NHK의 역사관을 토론, 감시한다는 전국 네트워크도 만들어졌다. 이 네트워크는 민감한 역사 내용을 제작할 때는 역사가, 시청자와 협의체를 만들어 명실상부하게 공영성을 발휘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2010년에 맞는 60년, 70년, 100년, 150년 모두 결코 가벼이 대할 수 없는 역사적 주제라며 대화에 강한 방점을 두고 있다.

바다 건너 한국으로 돌아와 말을 이어보자. 한국의 2010년도 그냥 가볍게 넘어가기엔 역사적 비중이 만만찮은 해다. 경술국치 100년, 한국전쟁 60년, 4ㆍ19혁명 50년, 광주민주항쟁 30년. 일본보다 해야 할 말이 훨씬 더 많은 그런 해를 한국은 맞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는 본격적인 공익 서비스를 선사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회심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3ㆍ1절은 공영방송이 2010년에 역사를 어떻게 다룰지를 예견해보는 날이었다. 경술국치 100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3ㆍ1절을 다룰 공영방송의 모습이 궁금했다. 왜곡된 역사관으로 역사를 그르치면 치도곤을 안기리라 내심 다짐하며 기다렸다.

되돌아온 답은 공영방송의 모르쇠다. 외주 제작 프로, 재방송으로 모르쇠와 부끄러움을 살짝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마치 역사를 잊자고 주문하는 듯 소리 없이 3ㆍ1절을 보냈다. 놀라움에 공영방송이 내놓은 올 한 해 프로젝트를 뒤져 보았다. 어디에도 2010년에 역사를 되새겨 보겠다는 계획은 없었다(참, 6ㆍ25특집으로 KBS가 ‘전우’ 드라마를 만든다고는 한다). 일본과는 달리 역사 논의를 펼칠 여지조차 제공하지 않을 모양이다.

3ㆍ1절 다음날 한 공영방송 사장은 동계올림픽 중계를 못해 울분을 삼켜야 했다고 토로했다. 한국의 공영방송 사장은 시청자의 그것과 어찌 그리 다른 울분을 가졌을까 의아했다. 아예 역사를 지우고 있음에는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리곤 ‘개그콘서트’의 동혁이 형의 어록에서 한 구절을 따내 전하고 싶었다. “역사가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이야?”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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