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이 8할이었다. 예전엔 '천기'(天氣)라 불리던 날씨를 예측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랴. 천기누설(天氣漏洩)을 업으로 삼다 보니 남모를 속앓이도 많을 터. 그마저도 자주 틀려 '오보청'이란 멍에까지 지고 있으니 기상청 예보관들은 하늘과 땅, 사람들에게 늘 면목없다.
해외유학에, 석ㆍ박사 학위에 과학깨나 한 예보관들이 오보 징크스에 개고기를 삼가고, 전병성 기상청장은 "기도발이 잘 듣는다는 계룡산 등반을 많이 해야겠다"고 넋두리하는 건 그만큼 천기를 빼내는 작업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인력으론 미치지 못하는 바 기상청은 슈퍼컴퓨터의 위력에 실낱 같은 희망을 얹고 있다. 올 2월 미국에서 들여온 슈퍼컴퓨터 3호기의 출사표는 자못 미덥다. 녀석의 포부를 들어보자.
저는 기상슈퍼컴퓨터 해빛(Haebit)입니다. 따스한 햇볕처럼 고마운 정보를 제공하라고 여러분이 지어주신 이름(공모)이죠. 올 5월부터 노쇠한 기상슈퍼 2호기(2005년 도입)의 기상예측역할을 분담하게 됩니다. 충북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 내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가칭)에 자리잡았죠. 몸값(502억원)만 비싸고 날씨도 못 맞추는 놈이라고들 하는데, 이번엔 비장의 무기를 두 개(예측모델과 기상위성)나 더 갖췄습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할게요. 날씨예보를 하기 위해선 ▦세계 곳곳의 기온 습도 바람의 방향 등 다양한 관측 자료 ▦기상현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공식 등을 빠르게 계산할 계산기가 필요해요. 저를 똑똑한 계산기라 여기시면 되요. 현재는 기상슈퍼 2호기 성능의 1.5배 수준이지만 이르면 9월 저의 짝꿍인 해담(Haedamㆍ해를 담는다)과 해온(Haeonㆍ온누리를 밝힌다)까지 합류하면 2호기의 37배 성능을 발휘해 온전한 기상슈퍼 3호기의 시대가 열리는 거죠.
성능은 상상을 초월하실 거에요. 5억5,400만명이 1년간 머리 싸매고 해야 할 분량을 단 1초 만에 계산할 수 있거든요. 전문용어로는 340테라플롭스(TFㆍ1테라플롭스는 초당 1조회 연산처리)라고 하죠. 저장능력도 2호기에 비해 24배 늘어납니다. 현재 12명의 기상청 연구관이 제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막바지 점검 중이랍니다.
하지만 계산기만 좋다고 답을 맞출 수는 없는 법. 제대로 된 정교한 공식을 집어넣어야죠. 날씨 예보엔 시간변화와 날씨현상을 물리방정식으로 표현한 예측모델이란 공식이 있는데 5월부터 새로운 공식을 도입합니다. 기존엔 일본과 미국 모델을 썼는데 세계2위 성능을 자랑하는 영국모델을 예보에 사용하거든요. 물론 우리실정에 맞게 개선해야죠. 이 작업이 끝나면 전체 지구의 표면과 상공을 기존의 가로세로 40㎞ 간격, 상하 50층에서 25㎞ 간격, 70층으로 더 정밀하게 쪼개 계산하게 됩니다.
똑똑한 기계(슈퍼컴)와 공식(예측모델)을 준비했다면, 남은 것은 관측 자료의 질을 높이는 것. 바로 4월 발사예정인 '통신해양기상위성'입니다. 발사중량(위성+연료 무게)이 2,500㎏이나 되는 덩치지만 동경 128.2도, 적도 3만6,000㎞ 상공에서 수많은 센서로 아주 예민하게 우릴 내려다 볼 거에요.
그간 주변국이 관측한 자료를 받아 쓰던 우리가 자체적으로 3시간 간격마다 전 지구를 관측하게 되죠. 특히 태풍 같은 위험기상 발생이 예상될 때는 한반도 주변을 8분 간격으로 관측할 수 있어요. 관측자료의 자주화를 이룬 셈이죠. 관측능력은 4배 이상 향상될 거에요.
인간이, 혹은 기계가 완벽하게 날씨를 맞추기란 불가능하답니다. 하지만 새로운 예측모델과 해양통신위성을 거느린 제가 나선다면 조금 더 정확한 예보를 기대해도 될 거에요. 기상청도 2010년 세계 9위인 수치예보 성능을 6위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한 답니다. 지켜봐 주세요.
청원=글·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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