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렇게 방치돼 있다니"
4일 오후 4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봄비가 흩뿌리는 야산의 무성한 수풀을 보며 두 노인이 한탄했다. 이 야산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부랑청소년 감화시설로 세운 선감학원(한국일보 2월26일자 11면)에서 숨진 아이들이 매장된 곳.
두 사람은 '아!선감도'란 소설로 선감학원의 실체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이하라 히로미츠(75·井原宏光)씨와 지금도 선감도에 사는 그의 초등학교 친구 홍석민(75)씨다. 8년 만에 입국해 선감도를 찾은 이하라씨는 "1996년 위령제 할 때는 깨끗이 정리됐었는데 다시 풀밭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65년 전 기억이지만 두 노인은 소년들이 묻혔다는 자리를 정확히 손으로 짚어냈다. 일제시대때 세워진 선감학원 자리도 똑똑히 기억했다. 현 경기창작센터와 숙소 사이에 선감학원이 있었고, 바로 앞은 학원장의 사택이었다. 이하라씨는 "선감도에 묻힌 억울한 영혼들을 하루라도 빨리 위로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하라씨는 선감학원을 다룬 소설로 고초도 겪었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공개하고, 스스로 선감도에 위령비를 세우겠다고 나서자 일본 내 극우세력의 살해위협까지 받았다고 한다. 한일 관계가 냉랭했던 1960년대 선감도에 왔을 때는 간첩으로 오인 받은 적도 있었다.
그의 오랜 바람은 선감도 위령비 건립이다. 그는 "원인을 제공한 일본인 중 한 사람으로서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내 뼈를 선감도에 묻어달라고 유언도 이미 가족에게 남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하라씨의 뜻이 이뤄지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안산시는 10여년 전 위령비 건립이 무산된 이유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안산시 관계자는 "당시 공무원들은 모두 퇴직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고 다시 시비를 들여 위령비를 건립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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