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김씨의 시조 '김창원'이라고 불러주세요."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 부징고 도나티엔(Buzingo Donatienㆍ32)씨는 지난 해 9월 귀화를 신청한 뒤로는 매일 새벽마다 그 날이 한국인으로서 맞이하는 새 날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고 말했다.
근로자로, 난민으로 버텨낸 한국 생활 8년.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하고, 어엿한 대학생이 되기까지, 그는 줄곧 두 다리와 심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이제 한국인으로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영업 전문가가 되기 위해 달리고 있다.
지구촌 최대의 빈국 가운데 하나인 그의 조국 부룬디에서 그는 내전으로 부모님을 잃었다. "16살 때였어요. 공부 열심히 해서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희망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총명한 그를 아끼던 친지들의 도움으로 대학생이 되지만 내전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방황하던 그에게 한국 대구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희망의 입구 같았다고 한다.
대학 3학년이던 2003년 8월, 그는 코치도 없이 육상 1만m와 하프마라톤에 참가했고, 대회 직후 귀국을 포기한다. "어려서부터 달리기는 자신 있었어요. 달리면 잡념도 사라지죠."
언어도 통하지 않는 검은 피부의 청년이 의지할 데 없는 타국에서 살아가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쇄소 직공을 시작으로 시계공장, 카메라 렌즈회사 등을 전전하며 근근이 생계를 해결했고, 불법체류자는 안 돼야겠다며 어렵사리 체류 연장을 거듭했다. 2005년 6월 그는 난민 자격을 얻었다.
그 동안에도 그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리다 보면 새로운 희망의 문이 열릴 거라는 믿음을 그는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4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 마라톤대회에서 그는 하프코스 1등을 차지했고,경남 창원에서 '마라톤 기업'으로 알려진 현대위아 마라톤동호회 회원들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주선으로 2005년 현대위아 사원으로 입사한다.
그는 2005~2009년 국내에서 열린 내로라하는 10여 개 마라톤대회에 현대위아 소속으로 참가해 마스터즈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했고, 2시간 18분이라는 국내 마스터즈 부문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현대위아는 제게 부모님 같고 고향 같은 안식처 입니다." 그의 한국이름 '김창원'도 회사에서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틈틈이 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서 우리 말과 글을 익혔고, 컴퓨터 학원도 다녔다. 그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못다한 공부를 위해 최근 경남대 경영학부(야간)에 외국인특별전형으로 편입학한 그는 이 날(3일) 오후 6시 첫 수업을 앞두고 살짝 들떠 있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려면 힘들 테지만 마라톤 하듯 열심히 달리면 되겠죠" 그는 우선은 한국인이 되는 것, 다음은 국제무역을 전공해 자신이 소속된 차량부품 영업지원팀 해외수출 담당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먼 조국 브룬디에서 여기까지 달려왔듯이 제 꿈들을 향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듯 성실하게 달려가겠습니다."
창원=글·사진 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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