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딴 날, 대한민국의 많은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눈시울을 적셨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인식을 깬 최고의 연기, 혼신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개척한 한 인간에 대한 절절한 감동 때문이었으리라.
그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김연아 뉴스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한다. 본인은 은퇴를 고려한다는 등, 아이스 쇼 단에 갈 것이라는 등, 다음 에는 트리플 악셀이 필요하다는 등, 소치 올림픽까지 가서 아사다 마오와 재대결을 벌여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고 추측도 다양하다.
스무 살 나이에 세상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세계 최정상에 오른 대한민국 처자의 앞날은 대체 어떻게 될까, 쓸데없는 상상과 걱정을 하게 된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녀가 맞닥뜨릴 인생의 많은 파도들은 어느 방향에서 올까. 주책 맞은 노파심이지만 우리는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최정상에 오르고도 불행한 선택으로 모두를 슬프게 했던 한 여배우의 이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리고 만약 김연아 선수에게 개인적인 편지를 단 한 줄이나마 쓸 수 있다면 '지금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과 결정이 전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며, 그녀 역시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아 나갈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솔트 레이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사라 휴즈는 예일대에 들어가 공부하느라 다시는 스케이트화를 신지 않았다고 한다. 골프의 미셀 위도 스탠포드 대학에 들어가 골프와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김연아에게 지금 부와 명예는 주어진 것이지만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장담 할 수 없다. 나는 오직 현명한 판단과 인생에서 얻어지는 진짜 배기 경험들만이 그녀가 지금 얻은 것을 지켜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 공부하라고, 지금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연애를 하고, 상처를 받고, '뭔가를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최고의 몸값으로 CF를 찍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스무 살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 지금 해야 인생에서 그나마 비용이 덜 들어가는 경험들, 역설적으로 소소한 실패와 좌절을 지금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은 비단 김연아 선수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다른 젊은이들에게도 똑 같이 권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한민국의 대학 시스템이 지금 잘 나가는 젊은 스타나 스포츠 선수들을 너무 봐 준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출석 한 두 번이면 학점을 딸 수 있고, 책 한 권 안 읽어도 졸업장을 준다. 영화학과 강사 시절, 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아무리 대단한 영화계 스타일지라도 적어도 내 강의에 한해서는 시험을 보지 않으면 절대 학점을 주지 않은 적이 있었다. 모두들 힘들어 했지만, 많은 친구들이 한 두 권 책을 읽고라도 시험을 보았고, 오히려 교수의 그런 관심과 태도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은 적도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스타일지라도 김연아는 지금 스물 한 살의 대학생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의식 있고 똑똑한 그녀가 인생의 파도들을 잘 헤쳐나갈 것을 믿는다. 아니 그래야 한다. 왜냐면 김연아 그녀는 내 후배들과 내 딸의 롤 모델이므로.
김연아. 그녀는 지금 곳곳에 암초가 숨겨져 있는 인생의 빙판을 탈 워밍 업을 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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