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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재규어도 지진 앞에 무릎" 칠레 시민들, 정부 늑장대처에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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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재규어도 지진 앞에 무릎" 칠레 시민들, 정부 늑장대처에 분노

입력
2010.03.0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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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8.8의 대지진에 강타당한 지 닷새째인 3일(현지시간) 칠레에서는 도로, 다리 등의 붕괴로 구호품이 피해지역에 제 때 도착하지 못하면서 약탈과 폭력이 멈추지 않고 있다. 칠레 국민들 사이에선 정부와 시민들이 보여준 무능과 무질서로 남미 경제대국으로서 지켜온 국가적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태평양 연안에서 추가 피해 예상돼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2일 대지진과 쓰나미에 따른 사망자가 최소 795명이라고 발표했다. 피해 가옥은 120만 채에 이르고 이재민은 2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도로 붕괴와 통신 마비 탓에 쓰나미가 덮친 태평양 연안 마을의 피해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터라 사망자 수가 급증할 여지도 있다.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해안 마울레 지역의 사망자가 1,000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 마련된 칠레 지진 실종자 신고 사이트 내 명단은 이미 4,000명을 훌쩍 넘었다.

약탈과 폭력 기승

도로 파괴로 생필품 배급이 늦어지면서 약탈, 강도 등 폭력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외신들은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잘 차려 입은 시민들마저 약탈에 가세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늑장 대처와 재난으로 드러난 형편 없는 시민의식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쏟아져 나왔다. 아이티 지진 당시 15톤에 이르는 식량지원과 함께 의료ㆍ구조팀을 즉각 파견했던 칠레는 정작 자국에서 발생한 지진에는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쓰나미 경보를 내리지 않아 초기 대응에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이후 해안 지역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은 증폭됐다. 구조요원인 산타 크루즈(20)는 AP통신에 "칠레인은 '남미의 재규어'로 불리며 자존심과 강인함의 상징이었는데 실상 재규어에 근접하지도 않았다"고 침울해했다. 주민 3만명의 해안 마을 로타의 주지사는 "(시민들은)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심리적 외상 정도를 전했다. 칠레 유력지인 라 떼르세라는 "약탈과 폭력은 정부의 허약함과 미적거림을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군 병력 치안활동 계속

약탈이 계속되자 칠레 국민들은 1만4,000여명의 군 병력이 투입돼 치안확보에 나선 것을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있다. 칠레 국민은 20년 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 독재 정권이 종식된 후 군의 일상 생활 개입을 혐오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무질서보다는 군대가 거리를 활보하는 게 낫다는 반응이다. 2일 1,500명의 군인이 지진 최대 피해지인 칠레 제2의 도시 콘셉시온에 당도하자 시민들이 손을 흔들며 군을 환영했다.

금융위기 속에서 국가경제를 지켜내며 최근까지 70%에 육박하는 지지도를 자랑했던 바첼레트 대통령은 결국 임기 말 예상치 못한 대재난과 늑장 대처로 오는 11일 거센 비판 속에 대통령직을 차기 세바스티안 피녜라 당선자에서 넘겨주게 됐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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