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훈 중앙대 총장은 얼마 전 전체 교수들에게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경기 하남 캠퍼스에 이어 인천 검단신도시에도 캠퍼스를 새로 조성한다는 내용이었으나, 속내는 따로 있었다.
박용성 이사장과 박 총장 자신이 주도하는 구조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그는 이메일에서"기획된 구조조정이 잘 마무리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중앙의 꿈을 이루는 데 일조한 행복한 총장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사실 박 총장의 이미지는'구조개혁 전도사' 이미지와는 언뜻 조합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명 작곡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곡을 작곡했고, 2008년엔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이력이 말해주듯 예술가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부분을 간직하고 있음에 틀림없으나, 그는 지난해 총장에 연임되면서 8개 단과대학, 37개 학과를 없애는 무시무시한 구조개혁 칼날을 박 이사장과 함께 휘두르고 있다.
백화점식의 효율이 떨어지는 방대한 학과 운영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박 총장은 박 이사장과의 호흡을 의식한 듯 "(이사장과 총장은) 구조개혁 추진에 대한 생각이 같다"며 운을 뗐다.
인터뷰= 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_중앙대 구조조정은 누가 주도하고 있나요.
"당연히 총장인 제가 하고 있어요. 박 이사장이 구조조정 방안의 큰 그림을 마련한 건 사실이지만, 학내 논의를 거쳐 나온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총장 몫이지요. 근본적으론 구조개혁에 대한 생각이 이사장이나 총장이나 같다고 보면 됩니다."
_지난해 마련한 구조조정안은 확정안인가요.
"곧 최종안이 나올텐데, 본안과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중앙대는 지난해 12월 잠자던 조직에 대형 메스를 들이 댔다.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40개 학과(학부)로 축소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두산그룹이 재단을 인수한 지 반년이 겨우 지난 시점에서 던진 개혁의 승부수였다>중앙대는>
_구조조정 최종안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나요.
"대학 내 계열별 위원회와 본부 위원회가 협의를 거쳐 마련한 구조조정안을 일단 교무위원회에 넘깁니다. 교무위는 총장이 주재하게 되는데, 여기서 합의를 거쳐 이사회에 구조조정 최종안이 전달돼 승인을 받게 되는 거지요."
_본부 최종안을 이사회에서 거부할 수도 있나요.
"이사회에서 제동을 걸면 다시 논의를 해야겠으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 겁니다. 본부안대로 결정될걸로 기대해요. 이달 말쯤이면 이사회 최종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박 총장은 당초 내놓은 구조조정안의 일부 수정을 시사했다. 구조조정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1~2개 정도의 학과를 살리는 쪽의 의견이 나왔다는 것이다> 박>
_박 이사장은 구조조정안 논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
"박 이사장의 언급은 일절 없었어요. 경영대 비율을 높인다거나 공대만 키우겠다는 식의말도 전혀 없어요. 그렇다고 인문학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에요. 기초학과를 없애면 종합대학일 수가 있겠어요?. 구조조정안에 따르면 문과대학의 경우 오히려 커졌어요. 박 이사장은 학교(박 총장을 지칭)에 구조조정을 일임했어요. 어느 학과를 없애거나 늘리가고 말한 적은 없다는 얘기지요. 총장이 다 책임지고 있어요."
_구조조정의 핵심이 실용학문 위주라는 지적엔 동의하나요.
"그런 지적은 구조조정의 방향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학본부가 중심이 된 본부위원회가 마련한 안을 보더라도 종합대학의 기본인 순수학문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오히려 흩어진 학문단위를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편성하고 있어요. 미래사회를 선도할 학문분야가 무엇인지 파악해 그 분야로 진출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종합대학의 사명이라고 봐요. 의생명공학, 금융공학, 에너지 공학분야를 신설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해요."
_비실용학문 전공 교수들과 학생 반발은 어떤 식으로 마무리할 계획인가요.
"비실용학문을 축소하거나 도외시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방향은 절대 아닙니다. 문제는 개혁이라는 총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면 자신의 소속학과가 변화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봐요. 실용과 비실용이라는 경계는 의미가 없어요. 해당 (비실용)교수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줬지만 정적 의견을 내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박 총장은 구조조정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대부분 구성원들이 개혁방안에 공감하고 있다"거나, "반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할때는 아니라고 본다"는 식으로 구조조정을 낙관했다. "개교 100주년이되는 2018년 께면 '빅5' 대학에 너끈히 진입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박>
_올해 입시에서 이른바 '두산 효과'를 봤나요.
"다른 경쟁 대학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합격선이 높았던 다른주요 사립대 보다 커트라인이 오히려 높은 학과들이 적지 않아요. 의대의 경우 서울대 의대 합격생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어요. 공대 등도 마찬가지에요. 입학생들의 수준이 예년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또 재단이 바뀐뒤 이공계열 교수의 SCI급 논문이 100% 늘었습니다. 연구실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아요. 전기요금이 종전 보다 2배 가량 증가했어요."
_교수들이 부쩍 피곤해졌겠네요.
"사실 중앙대 교수들의 역량은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경영대 교수진 보다 더 화려한 경력의 교수들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단지 그동안 재단의 어려움 때문에 빛이 나지 않았을 뿐인데, 앞으로는 180도 달라질 겁니다. 교수 개혁도 구조조정만큼 중요하다고 봐요. 최근 3명의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돼 퇴출 당했어요. 조교수에서 부교수 승진 대상이 재임용이 안된 거지요. 중앙대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에요. 두산이 재단을 인수한 이후 성과급 연봉제로 변경한 뒤 나타난 현상이지요."
_교수 퇴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교수가 퇴출되는 일은 그렇게 흔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웬만해선 재임용에서 탈락되진 않을 거라는 뜻이지요. 기존 교수들을 의도적으로 퇴출시키기 위한 구조조정도 없을 겁니다. 다만 정년이 다가온 교수들은 연구보다는 강의를 중점적으로 해달라고 주문하고 있어요. 오랜 경륜과 학식을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일이 교수로서의 임무와 부합한다는 판단입니다."
_대입 자율화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지요.
"입학사정관제나 수시모집 등에서 입시 자율화는 어느 정도 이뤄진 측면이 있다고 봐요. 다빈치 전형 등 중앙대가 필요로하는 인재상에 입각한 인재를 선발하는고 있어요. 많은 부분에서 자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진 것은 맞아요. 그러나 대학 고유의 설립정신을 살릴 인재를 선발하려면 대입에 완전한 자율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선 아직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아요. 인재양성의 시작은 선발입니다. 선발에서부터 완전한 자율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인재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_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나요.
"중앙대는 입학사정관제의 효시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2007학년도부터 입학사정관 선발 제도를 시행해왔어요. 이를 통해 다양한 인재들이 입학했고, 학업성취도 측면에서 본다면 (입학사정관 전형 입학생들의)학점이 평균을 상회하고 있어요. 대학이 원하는 창의적 융합형 인재를 선발하기도 했어요.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들어온 확실한 목표를 갖고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한 학생들이었어요. 학생부의 교과 및 비교과 영역 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잠재성과 창의성을 평가했어요."
_다른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습니다.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현행 입학사정관제는 시행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잘 굴러가고 있다고 판단해요. 그렇지만 속도조절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선발인원을 급하게 확대하는 것은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어요. 제도의 취지가 잘 살 수 있도록 고교부터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줘야 겠지요. 물론 대학도 제도의 취지와 관련 정보를 보다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대학 간에 지나치게 경쟁하는 분위기도 완화돼야 할 것으로 봐요. 입학사정관 제도가 제대로 안착하려면 대학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노하우를 나눠야 하는데, 지금은 서로 꺼리고 있어 안타까워요."
<강력한 구조조정 이후가 궁금했다. 박 총장은 "학생들이 공부에 매진하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중앙고' 소리를 듣게 하겠다"고도 했다. "대학엔 쉽게 들어오게 하고, 들어온 학생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공부시켜 사회에 내보내는게 대학의 책무라고 여기고 있어요. 우수하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육성하려면 아무래도 졸업이 어려워야 겠지요"< p>강력한>
정리= 박철현기자 karam@hk.co.kr
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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