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다르게 읽힌다.
46명 선수들은 밖으로 눈물을 쏟아내거나 속으로 울며 17일간의 밴쿠버동계올림픽을 뜨겁게 달궜다. 같은 눈물이지만, 의미는 제각각. 벅찬 기쁨이 만들어낸 눈물이 있는가 하면 피땀 흘린 시간이 아까워 흘린 서러운 눈물도 있었다. '눈물'을 키워드로 한국선수단의 밴쿠버동계올림픽을 돌아봤다.
회한의 눈물과 툭 털고 되찾은 미소
"(이)호석이형은 그날 밤 울면서 밤을 샌 것 같아요." 남자쇼트트랙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딴 이정수(21ㆍ단국대)의 '증언'이다. '그날 밤'은 바로 14일(한국시간) 남자쇼트트랙 1,500m가 끝난 밤. 이호석(24ㆍ고양시청)은 결승 마지막 코너에서 안으로 파고들다 성시백(23ㆍ용인시청)과 충돌했고, 한국은 눈앞에 보이던 금-은-동메달 싹쓸이 대신 금메달 1개만 챙겼다. 이후 웃을 날이 없었던 이호석은 27일 성시백을 포함한 동료들과 5,000m 계주 은메달을 합작한 뒤에야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아쉬움의 눈물이 환희의 눈물로
이상화(21ㆍ한국체대)는 4년 전 토리노대회 여자스피드스케이팅 500m 직후 기자회견 때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조가 남은 줄 모르고 3위로 착각했다가 최종 5위로 떨어지자 열일곱 여고생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상화는 4년 뒤인 밴쿠버에서 또 한번 울었다. 17일 500m에서 1, 2차 레이스 합계 76초09로 금메달. 아시아 최초의 여자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타이틀도 이상화의 차지였다. 4년 전 아팠던 기억과 지난해 여름 발목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던 위기가 머리를 스치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여왕이 흘린 3번의 눈물
지난 26일 피겨 여자싱글에서 역대 최고점(228.56점)으로 금메달을 딴 김연아(20ㆍ고려대)는 3번 울었다. 10년 넘게 준비해 온 무대에서 혼신의 연기를 마치자 무거운 짐이 해체된 자리에서 눈물이 솟았고, 시상식에서 조애니 로셰트(캐나다)를 보자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로셰트는 경기 직전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안고 동메달 연기를 펼쳤다. 김연아는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라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다시 한번 눈물을 훔쳤다. 김연아가 시상대에서 눈물을 보이기는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때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서러움과 오기의 눈물
"언니들한테 꼭 이긴다고 약속했는데…." 27일 여자쇼트트랙 1,000m 결승에서 왕멍(중국)과 캐서린 뤼터(미국)에 이어 3위로 골인한 박승희(18ㆍ광문고)는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눈물을 닦느라 손이 모자랐다. 개인적인 아쉬움보다는 '중국은 꼭 이긴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고 분한 마음에 흘린 눈물이었다. 여자대표팀은 앞선 25일 3,000m 계주 결승에서 최강 중국을 제치고 1위로 골인했으나 석연찮은 실격 판정으로 금메달을 잃었다. 김민정(25ㆍ용인시청) 등 4명은 피니시 라인 통과 후 기뻐서 울었으나 실격 판정 후에는 억울해서 울었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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