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26일 서울 지역 13개 자율형사립고에서 발생한 부정 입학 사태와 관련, 132명의 학생을 입학 취소시킨 것을 두고 해당 학생의 학부모들과 시교육청이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시교육청은 "학부모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고, 학부모들은 "학교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이제 와서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한다"고 맞섰다.
26일 오후 1시 시교육청 정문 앞에는 교장추천 전형으로 응시했다가 자율고 입학 취소 통보를 받은 학생들의 학부모 20여명이 모여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곳에 모인 학부모들은 "중ㆍ고교 교장들이 담합해 우수 학생들을 편법 입학시키려 학생과 학부모들을 설득해 놓고는 이제 와서 발뺌한다"며 "아이들이 희생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J중 졸업생의 학부모인 B씨는 "담임선생이 A고로부터 외고 전형 탈락자 등 우수 학생 위주로 학생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아이에게 추천서를 써 줬다"며 "학교가 시교육청과 고교에 문의해 지원이 가능하다고 해 원서를 접수를 했을 뿐인데 이제 와서 부정 입학자라고 하니 너무 황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학이 취소된 학생들 중 상당수는 이미 1, 2월 예비학교 등을 통해 자율고를 다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학부모들은 "교복도 맞추고, 친구도 사귀었는데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교육 당국과 일선 학교들의 잘못과 함께 학부모의 책임도 거론했다. 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모르고 도둑질한다고 죄가 안 되느냐, 자격이 없는데도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에 합격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규정이 모호했다는 지적에는 "세세한 기준을 설정하면 실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학생이 피해를 본다. 학생을 가장 잘 아는 학교에 학생 선발 권한과 책임을 주는 차원에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시교육청은 학부모의 소송에 대비해 법적 자문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법무법인을 통해 검토를 마쳤다. 교장추천 전형을 통해 어려운 학생에게 혜택을 주도록 돼 있는 제도를 악용해 서류를 조작하는 등 부정한 행위를 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 가운데는 교장추천 전형에 대한 기준이 없었는데 입시 전형이 끝난 후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입학을 취소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정은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추천 대상자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이 교장에게 권한을 위임했다가 합격자 발표 후 정해진 기준을 소급 적용해 합격 취소라는 불이익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실제 소송에 들어간다면 시교육청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또 교장추천서를 의도적으로 심각하게 조작했을 가능성도 크지 않아 학생과 학부모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시교육청이 건보료만을 기준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서도 학부모와 법률 전문가들은 문제를 삼고 있다. 기준이 너무 획일적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은 "교육청으로서는 건보료 이외에는 제시할 자료가 없고, 입학 취소 여부는 해당 고교가 건보료 이외에 가정 형편을 고려해 최종 판단하게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이번에 문제가 발견된 자율고는 감사 결과에 따라 학급수를 축소하는 등 행정 제재를 가하고 이번 사태에 연루된 중학교 교장들은 3월 1일자 교원 인사 대상자에서 제외시킨다고 시교육청은 밝혔다.
박철현 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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