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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독일군에 점령당한 영국의 섬마을 실화를 소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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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독일군에 점령당한 영국의 섬마을 실화를 소설로

입력
2010.03.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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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지음ㆍ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발행ㆍ439쪽ㆍ1만3,000원

10명도 넘는 인물들이 서로를 수신인 삼아 보낸 168통의 편지로만 구성된, 미국 작가 메리 앤 섀퍼(1934~2008)의 첫 소설이자 유작이다. 초고를 쓴 뒤 건강이 악화된 섀퍼를 대신해 그녀의 조카이자 동화작가인 애니 배로스(48)가 작품을 마무리했다. 인물과 사건을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하며 읽어야 하지만, 빈틈 없는 구성 덕에 그런 조건이 번거롭기보다는 마치 남의 일기를 훔쳐 보는 듯한 재미를 더해준다.

소설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듬해인 1946년을 배경으로 한다. 런던에 사는 32세의 인기 작가 줄리엣 애슈턴은 생면부지의 발신자, 영국 남부 채널제도 최남단의 건지 섬 주민 도시 애덤스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중고로 구한 영국 수필가 찰스 램의 책이 원래 줄리엣의 소유였음을 안 도시가 그녀에게 램의 다른 책도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한 것. "독일군 점령 하에서도 저는 찰스 램 덕분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돼지구이에 관한 글이 압권이지요. 우리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독일군에게는 비밀로 해야 했던 돼지구이 때문에 탄생했습니다."

영국 영토 중 독일군에게 점령 당한 곳이 있었음을 처음 알게 된 줄리엣은 건지 섬의 사연과 그곳 사람들이 꾸리고 있는 희한한 이름의 독서 모임에 호기심을 품고 도시에게서 주민들을 소개 받아 서신을 교환한다. 독일군의 포로를 숨겨줬다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긴 엘리자베스, 그녀와 독일군 장교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살뜰히 키우는 아멜리아, '세네카 서간집'을 읽고 알코올중독을 이겨낸 전직 의사 존 등 섬사람들의 기막힌 사연과 따뜻한 심성에 감동한 줄리엣은 급기야 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기록하기 위해 건지 섬을 찾고 서서히 이들과 동화된다.

작가 섀퍼의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전쟁의 참상과 나치 독일의 만행을 폭로하기보다는, 고난 속에서도 꿋꿋한 인간애와 희생정신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섬사람들이 독서모임을 결성, 전쟁의 시련을 견디는 모습은 문학의 치유력을 새삼 환기시킨다. '작은 슬픔은 말이 많지만, 크나큰 슬픔은 말이 없는 법이다'(세네카)와 같은 명문, 찰스 램이 어머니를 칼로 찌른 여동생 메리를 평생 돌봤던 일화 등도 적소에 배치돼 문학의 매력을 전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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