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스러운 불운이 끝까지 발목을 잡았지만, '10년 라이벌'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난 14일(한국시간) 남자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골인 직전 충돌, 은ㆍ동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성시백(23ㆍ용인시청), 이호석(24ㆍ고양시청)이 끝내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성시백은 27일(한국시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열린 밴쿠버동계올림픽 500m 결승에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샤를 아믈랭, 프랑수아 트램블리(이상 캐나다),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에 앞서 금메달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불과 몇 걸음을 남기고 갑자기 바깥으로 미끄러졌다.
다른 선수와 충돌도 없었고, 그저 발을 내딛는 과정에서 얼음과 순간적으로 '궁합'이 안 맞았다. 18년 만의 남자 500m 금메달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순간. 성시백은 아믈랭, 오노에 이어 넘어진 채로 3위로 골인했지만, 이후 오노가 트램블리를 밀친 이유로 실격당하면서 그나마 한 계단 오른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성시백에 앞서 이호석은 결승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500m 준결승에서 2위로 순항하던 이호석은 별안간 중심을 잃고 빙글 돌면서 코스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둘은 실망할 겨를이 없었다. 곧이어 열릴 5,000m 계주가 남아있었기 때문. 14일 이호석의 파고들기로 둘 다 메달을 날려보낸 이후 멀어질 수밖에 없는 사이였지만, 계주 결승을 앞두고는 하이파이브까지 해가며 분전을 다짐했다. 총성이 울리고 마지막 바퀴까지 한 팀도 멀찍이 뒤처지지 않는 전쟁 같은 레이스. 대표팀은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한 위기를 넘긴 끝에 막판 스퍼트로 귀중한 은메달을 합작했다. 성시백과 충돌 이후 죄인처럼 지내 온 이호석과,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호석과 라이벌 관계를 이뤘던 성시백은 그제서야 서로를 축하하며 얼싸안았다.
시상식 후 성시백은 500m때 넘어지는 순간을 설명하며 "하늘이 이것도 안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한숨을 쉬면서도 "계주에서 동료들과 메달을 따 괜찮다"고 했다. 이호석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낸다는 것 자체로도 값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란히 은메달 2개로 대회를 마친 둘은 기자회견장에서 서로를 향해 장난스럽게 웃기도 하고, 눈을 찡긋거리기도 했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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