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ㆍ사회 전문지들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제강점기를 재조명하고 한일 문제를 진단하는 기획을 활발하게 싣고 있다.
계간 ‘역사비평’은 봄호 특집으로 ‘식민지에서 산다는 것’을 마련하고 일제강점기의 학생, 지식인, 노동자, 농민, 지방유지, 연예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실제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를 다뤘다. 일제에 대한 협력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뛰어넘자는 의미다.
일제강점기 지방유력자들의 정치사회적 역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지수걸 공주대 교수의 ‘지방유지의 식민지적 삶’이 눈에 띈다. 구한말 지방의 유력자들은 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에 동참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지 교수는 강제병합 후 이들 대부분이 식민지 지배체제 내부로 포섭됐다고 본다. 이들은 부회ㆍ읍회 등 자문기구나 금융조합 등에 소속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비, 향응과 청탁 등 이른바 ‘뒷거래 정치’를 통해 자신이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는데, 공적 활동이나 도덕성을 매개로 명망이 형성된 것이 아니기에 해방 후 이들의 명망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좌익 명망가와 마찬가지로 이들 지방 유지들이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기 정치폭력의 최대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 여기서 연유한다고 지 교수는 결론 내린다.
류시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비슷한 시기에 도쿄에 유학하는 등 긴밀히 교유하며 ‘도쿄 삼재(三才)’로 불렸던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의 생애를 평가한다.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로 민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일제의 이른바 ‘문화정치’가 준 당근 앞에 훼절(최남선, 이광수)하거나 침묵으로 저항(홍명희)한 3명의 삶을 비교함으로써 지식인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계간 ‘창작과 비평’ 봄호에는 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식민주의와의 연관성을 고찰한 김홍규 고려대 국문과 교수의 기고가 실렸고, 반년간지 ‘한국사시민강좌’ 46집에는 일제 식민통치의 동기 연구에 집중하는 한국사학계의 문제의식과, 식민통치의 결과 연구에 주목하는 일본 사학계의 문제의식을 뛰어넘는 역사학 담론 개척에 나설 것을 주장한 이성원 한국청소년도서재단 이사장의 글이 실렸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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