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에 왁싱하느라 밤새고 나왔죠, 뭐."
'국가대표' 최용직(28ㆍ하이원)은 점프대로 향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스키점프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 중 하나가 왁싱. 안전과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눈 상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왁스를 발라줘야 한다.
그러나 한국 스키점프대표팀에게 왁스는 한 종류뿐이다. 외국처럼 왁싱 전문요원도 없어 선수가 경기 전날 잠 안자고 몰두해야 한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선수단은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를 땄다. 4년 전 토리노대회에서 기록한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성적이다.
이와 함께 미국(92, 2002년)에 이어 빙상 3개 종목(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에서 골고루 금메달을 획득한 두 번째 나라로 기록되며 자타공인 '빙상강국'으로 우뚝 섰다.
여자 피겨와 빙상만큼 뚜렷한 성적은 아니지만, 춥고 서러웠던 비인기 종목에서의 약진도 특기할 만하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판 쿨러닝' 봅슬레이대표팀은 28일(한국시간) 휘슬러 슬라이딩센터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4인승에서 3차 시기까지 19위를 기록, 20위까지 올라가는 결선에 진출했고, 라이벌 일본도 이겼다. 일본은 3차 시기에서 21위에 그쳐 결선 진출이 좌절됐다. "일본을 잡고 아시아 최강을 확인하겠다"던 목표를 보란 듯이 달성한 것. 강광배(37ㆍ강원도청)가 이끄는 대표팀은 결선에서 52초92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 합계 3분31초13으로 19위를 지켰다.
레이스를 끝내고 4명이서 번갈아 맞잡은 손뼉 사이로 그간 흘린 눈물이 파편이 돼 흩어졌다. 썰매가 없어 외국에 손을 내밀고, 변변한 경기장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하던 대표팀이었다.
850만명을 끌어 모은 영화와 달리 한 명의 관심이 절실했던 스키점프 '국가대표'들도 노멀힐(비행 기준거리 95m)과 라지힐(125m)에서 나란히 2명(김현기, 최흥철)이 결선 라운드에 진출, 내로라하는 강국들과 어깨를 견줬다.
먼 나라 얘기인 줄만 알았던 스키와 스노보드에서의 분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서정화(20ㆍ남가주대)는 프리스타일 여자 모굴스키에서 21위에 올랐고, 김호준(20ㆍ한국체대)은 한국 최초로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에 출전해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태어나서 처음 나선 올림픽에서 벅찬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비록 순위는 각각 22위, 36위로 하위권에 그쳤지만, 스켈레톤의 조인호, 루지의 이용(이상 32ㆍ이상 강원도청)이 펼친 불굴의 레이스도 전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귀중한 기회가 됐다.
한편 봅슬레이를 끝으로 출전 종목 일정을 전부 마친 한국선수단은 1일 오전 10시30분 BC플레이스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폐막식에 참석한 뒤 2일 오후 귀국한다. 한국 선수단 폐막식 기수는 모태범(21ㆍ한국체대)으로 결정됐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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