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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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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입력
2010.03.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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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년 묵은 육상 100m 벽부터 넘어 스피드코리아 잇겠다"

한국 육상계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쏟아지는 '빙속 금빛 질주'에 남몰래 속앓이를 하고 있다. 육상 100m에 해당하는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에서 모태범과 이상화(이상 21ㆍ한국체대)가 나란히 금메달을 따내자 생긴 '속병'이다. 지난 24일에는 빙판위의 마라톤에 해당하는 스피드스케이팅 1만m에서도 이승훈(22ㆍ한국체대)이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세계 정상에 오르자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한국 선수뿐만 아니라 아시아인 체형으론 불가능 하다고 여겨지던 '금단(禁斷)의 종목'에서 금빛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는데 '육상은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는 질타가 쏟아질 것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속병 증세가 가장 심한 사람이 대한육상경기연맹 오동진(62) 회장이다.

삼성전자 북미대륙 총괄사장을 지내는 등 수출전사로서 해외시장 개척에 평생을 다 바친 그는 일본의 소니와 미국의 모토로라를 누르고 북미시장에서 삼성브랜드를 1등으로 키운 주역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초에 한국 육상의 최고책임자로 변신한 그는 "기업인으로 보낸 35년보다 지난 1년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육상이 기록 향상은커녕 기존 기록도 따라잡지 못하고 뒷걸음질 친 탓이다. 취임과 동시에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꿈이 있으면 이루어진다' 라는 정신 무장을 위해 신발끈을 조였던 오 회장은 올 들어서는 '기록을 못 내면 한강에 몸을 던진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는 등 더욱 강도 높은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스포츠가 거의 전 종목에서 세계 챔피언을 배출했지만 육상만이 뒷걸음질 쳤다는 지적이 많다.

흔히 일본경제를 이야기 할 때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잃어버린 30년'이 있다. 바로 육상이다. 그것도 '육상의 꽃'으로 불리는 남자 100m에서 31년 동안 헛걸음질 했다.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기업인의 눈으로 보면 하한가를 치고, 올라가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30년은 희망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동안 역주행한 한국 육상이라고 비난 받는데,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광복 이후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해 세계 챔피언에 오른 종목이 육상이다. (1950년 보스턴마라톤 대회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3위를 휩쓸었다.) 동양인 최초로 올림픽에서도 두 차례나 족패천하(足覇天下)의 위업을 달성한 한국 육상이 유독 단거리 종목에서 헛걸음질 하는 이유는 빈약한 정신력 탓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마라톤에서 그나마 황영조, 이봉주라는 걸출한 스타로 명맥을 이어왔지만 이들의 은퇴로 캄캄한 암흑기에 접어든 느낌이다. 옛날 선배들은 굶주린 가운데서도 뛰고 달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운동환경이 나아지니까 열의가 없어졌다. 달리지 않아도, 기록이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내년 8월이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외국선수들만이 메달색깔을 다투는 장소제공에만 그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뼈아픈 지적이다. 그래서 지난해 초 취임하자마자 육상계 전반에 '감염'된 적당주의, 패배주의를 도려내는 정신력 강화훈련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초 국가대표 단거리 대표팀을 선발하면서 기록이 좋은 선수 대신 발전 가능성이 큰 유망주들을 대거 발탁했다.

이들에게 기록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당장 대표팀에서 짐을 싸야 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 솔직히 1등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겨룬다면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지만 스포츠는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 냉정하게 우리의 실력을 따져봐야 한다. 지금 기록을 보면 결선 진출자도 나오기 어렵지만 스포츠는 의외성이 있는 만큼 진인사대천명(眞人事大天命)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

-올해 최대 역점과제는 무엇인가.

31년 묵은 남자 100m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몇몇 신예들의 기량이 매섭다. 상반기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100m는 육상의 상징적인 종목이다. 거대한 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던 100m 장벽이 무너지면 봇물 터지듯 신기록이 쏟아질 것이다. 그래서 일단 0.0001초라도 기록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못지않게 육상인들의 머리 속에 '이기는 정신'(winning spirit)을 전파하는데 올인 하겠다.

-육상 발전을 위한 정부의 예산 지원은 충분한가.

침체된 육상을 다시 달리기 위해 정부측 관계자와 수 차례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또 예산 관계자를 설득해 올 예산을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증액시켰다. 하지만 이 모두가 기록 향상을 전제하는 꼬리표가 달린 예산이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지만 '당근' 못지않게 '채찍'도 함께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훈련을 게을리 하는 선수나 팀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불이익을 주겠다고 선포했다.

-취임 1년이 지났다. 그 동안 주목할만한 기대주를 꼽자면.

2009년은 악몽의 끝을 보았던 해이자 부활의 희망을 발견한 해로 기억된다.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에 역대 최대규모로 출전했지만 단 한 명의 선수도 결선 무대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채 최악의 성적표를 들고 짐을 싸야 했다.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아시아 육상선수권에서도 동메달 4개만을 따내 전체 38개국 가운데 19위에 그쳤다. 그러나 전국체전에서 한국기록 3개를 포함해 모두 25개의 신기록이 쏟아지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육상에 한번 미쳐보겠다'는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다.

-이들 젊은 피들을 어떻게 가르칠 생각인가.

좋은 지도자 밑에서 제때 가르쳐야 질적인 도약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 경보, 투포환, 장대높이뛰기 등 5종목에 걸쳐 외국인 전문코치를 선임한 데 이어 조만간 단거리 전문코치도 선발할 예정이다. 이들에게 선수선발, 지도까지 일임할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육상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접목시킬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 육상은 대표적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열리는 대회를 보면 관중들이 구름같이 몰려든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문제는 역시 기록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수영의 박태환, 피겨의 김연아 등과 같은 스타가 탄생해야 한다. 그래야 흥행이 되고 마케팅이 된다. 또 육상이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세일즈 마케팅까지 지평을 넓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신제품(기록향상)을 출시하기는커녕 재고품(기존기록)만을 시장에 내놓으면 소비자(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결국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아 퇴출당하게 된다. 그래서 올해의 육상경기연맹 키워드를 '국민속의 육상', '국민과 함께 하는 한국육상'으로 정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 장재근 육상트랙기술위원장

"올 6월10, 11일을 주목해주십시오. 대구에서 열리는 전국 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육상의 새 역사를 쓰겠습니다."

지난 20일 충남대학교에서 열린 '2011년 육상 대표선수단 지도자 워크숍'에서 만난 장재근(48) 육상 트랙 기술위원장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장 위원장은 1982년, 86년 두 차례 아시안게임 2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바람의 스프린터'. 특히 85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200m에선 20초41, 당시 아시아 신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다. 이 기록은 현재 25년째 한국 기록으로 요지부동이다.

"초등생들 조차 남자 육상 100m기록을 걱정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들립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안고 누가 열심히 달리려고 하겠습니까."

장 위원장은 육상이 처한 현실을 먼저 인정해야 미래가 보인다고 말했다. "제가 현역선수로 뛸 때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난이 오히려 더욱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국체전에서 등수에만 들어도 생활이 보장되는데 왜 '생고생'하면서 달려야 되냐고 되묻습니다. 그런 정신 자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장 위원장은 "육상은 체력에 앞서 정신력"이라며 "우리 선수들은 세계 일류선수들과 비교해서도 체력은 뒤지지 않지만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는 그는 "짧게는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위해서, 길게는 내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 대비, 한국 육상 부흥을 위해 총대를 메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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