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뎁이 출연하고 헬레나 본햄 카터가 호흡을 맞춘다. 제목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좀 본다"고 자부하는 관객이라면 한마디 붙일 만한 조합. "감독은 팀 버튼이 딱일세."
그렇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화팬들이 머리 속에 한번쯤 그려봤을, 이상적 조합으로 이뤄진 영화다. 기기묘묘한 판타지의 세계를 그린 원작에, 동화 속 주인공 같은 기이한 얼굴의 조니 뎁의 연기가 팀 버튼의 지휘로 펼쳐진다. '혹성탈출'(2001) 이후 팀 버튼의 영화에 개근하고 있는 팀 버튼의 연인 헬레나 본햄 카터는 '버튼표 영화'의 인장을 뚜렷이 새긴다. 게다가 이 영화, 3D다. 별난 상상력을 섬세한 비주얼로 표현해온 팀 버튼과 21세기의 요술방망이로 부상한 3D의 만남은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합이라 하겠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3D의 의상을 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캐릭터들의 동작 하나하나와 배경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영화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원작만큼 다채롭지 못하다. 그림은 입체적이고 이야기는 평면적이다. 팀 버튼의 기묘한 유머, 시각적 즐거움을 제외하면 앙상한 형체만 남는다. 하기야 어디 팀 버튼이 이야기꾼인 적이 있었던가. 그가 제시하는 영화세계를 즐길 각오가 돼 있는 마니아라면 두 손 들 영화다.
내용은 루이스 캐롤의 원작 동화를 비틀었다. 12세 소녀 앨리스는 성년을 눈 앞에 둔 19세의 또 다른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가 대신한다. 앨리스가 바보 같은 귀족 자제의 프로포즈로부터 도망치다 토끼굴에 빠지면서 판타지는 출발선에 선다. 앨리스가 추락 끝에 당도한 곳은 '언더랜드'라는 환상의 세계. 그곳에서 앨리스는 미친 모자장수(조니 뎁)와 겨울잠을 자는 쥐 등을 만나 잔인한 통치자인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으로부터 언더랜드를 구해야 하는 모험에 빠져든다.
눈길을 끄는 캐릭터는 역시나 미친 모자장수와 일명 '왕대그빡'으로 불리는 붉은 여왕이다. 얼빠진 얼굴에 럭비공처럼 튀는 예측불허 행동의 미친 모자장수는 일차원적 이야기에 입체감을 준다. 가분수인 선풍기 얼굴의 붉은 여왕이, 매사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외치는 "목을 베라" 고함은 그 자체로 훌륭한 웃음거리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이 연기를 위해 매번 3시간에 걸쳐 분장을 했다고 하는데, 정작 문제는 "늘 소리를 질러대니 밤 10시쯤 되면 목소리가 잠겨 안 나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팀 버튼과 조니 뎁이 일곱 번째 앙상블을 이뤘는데, 어두운 분위기의 전작들과 달리 화사하고 밝은 영화다. 4일 개봉, 전체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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