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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범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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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범고래

입력
2010.03.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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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올랜도의 놀이공원 시월드(Sea World)에서 수컷 범고래 틸리쿰(인디언 말로 '친구')이 여성 조련사 돈 브랜쇼(40)를 공격해 숨지게 했다. 갑자기 수조 위로 튀어 오른 몸길이 8m, 무게 6톤의 범고래가 조련사의 옆구리를 물어 물속으로 내동댕이친 것이다.

브랜쇼는 1983년 두 살 때 야생에서 포획돼 시월드로 옮겨 온 범고래와 16년 동안 인연을 맺어왔다. 범고래 수컷은 돌고래과 중 몸집이 가장 크다. 지능이 높고 길들이기 쉬운 탓에 전세계 수족관에서 곡예 동물로 사육하고 있다. 영화 <프리 윌리> 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범고래는'바다의 늑대''식인고래'로 불릴 정도로 사나운 포식자이자 대식가다. 바다표범이나 물개, 다른 종류의 돌고래도 잡아먹는다. 영화 <조스> 에 나오는 공포의 백상아리도 범고래에겐 간식거리에 불과하다. 한 범고래의 뱃속에선 돌고래 13마리와 물개 14마리의 사체가 발견된 적이 있다. 심지어 자신보다 덩치가 3~5배 큰 고래도 공격한다.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서 '어호(魚虎)는 이빨과 지느러미가 모두 창과 같다. 수십 마리가 무리 지어 고래를 충돌하여 물어뜯고 찌른다'고 적었다. 어호가 바로 범고래다.

■ 범고래가 바다에서 인간을 공격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쇼를 위해 사육되는 범고래가 조련사를 공격한 경우는 20여 차례나 된다. 범고래를 처음 기른 곳은 1964년 캐나다 밴쿠버의 수족관이다. 턱없이 작은 수조와 화학 처리한 물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세균성 감염이나 상처의 위험을 높인다. 이 때문에 등지느러미가 2~3년 안에 뭉그러지고 수명도 절반(20~25년)으로 단축된다. 범고래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사회적 동물인데, 포획한 곳이 달라 방언이나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갈등도 심각하다.

■ 틸리쿰이'종자 고래'라는 점도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범고래 수컷은 자연 상태에서 암컷을 여럿 거느리지만, 인위적으로 공급된 암컷들과의 관계가 원만했을 리 없다. 현재 많은 단체들이 범고래 사육을 막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야생동물은 절대 길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나운 동물은 누구나 지배욕구를 갖고 있고, 아무리 잘 훈련됐더라도 타고난 공격 본능을 없애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범고래는 하루 최대 160㎞를 이동하고, 두 시간 동안 3,000m까지 잠수할 정도로 활동 반경이 넓다. 틸리쿰의 공격은 자유를 얻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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