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는 것은 선거판의 상식이다. 그러나 분열은 쉽고 합치기는 어렵다는 현실 앞에 이 상식은 금방 무력해진다. 6ㆍ2 지방선거를 석달 여 남겨놓고 범야권에서 연대 논의가 무성하지만 진전이 없는 이유다. 필요가 절박한 만큼 논의의 틀은 어렵지 않게 만들어졌다.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이 참여한 5당 협상회의, 여기에 4개 시민단체가 가세한 '5+4 협상회의' 등이다. 선거 승리 후 과실 나누기인 '지방공동정부 운영'에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으나 연대방식에서는 각자 셈법이 판이해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 국민참여신당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제안한 정당지지율에 의한 공천 배분론은 '나눠먹기식 선거야합'이라는 민주당의 집중 포화로 성사가 희박하다. 그에 비하면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제기한 '연합정당론'은 나눠먹기나 밀실야합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 연합정당이라는 가설정당(paper party)을 만든 뒤 선거연합에 참여하는 각 당의 후보들이 모여 개방형 국민경선으로 단일후보를 뽑기 때문이다. 선거법상 당이 다른 후보들끼리는 경선을 할 수 없으니 경선으로 단일후보를 결정하려면 가설정당이라는 우회로가 불가피하다.
■ 가설정당은 실체 없이 서류상, 법률상으로 인정되는 정당이지만 야권의 단일후보는 그 이름 아래 기호를 통일하고 어느 정도 정책의 통일성도 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를 목전에 두고 선거만을 위해 급조되는 가건물 같은 임시 정당이 유권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민주당 주류나 다른 야당들도 '선거 승리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승리 지상주의'로 비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 선거의 장을 정체성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군소 정당들에겐 치명적 독이 될 수도 있다.
■ 가설정당론이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2007년 대선 당시 범여권이 대선 승리를 위한 정계 개편의 방편으로, 2008년 총선 때는 유 전 장관이 가설정당 수준의 무소속연대를 추진했다. 그러나 두 시도 모두 실패했다. 가설정당은 그만큼 허망하다는 뜻이다. 야권이 6ㆍ2 지방선거에서 견제의 기반을 구축하려면 선거연대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얕은 전술에 의한 연대는 성공하기 어렵고, 국민 지지도 받기 어렵다. 아이폰의 성공과 같이 기득권을 포기한 개방과 창조적 발상이 정치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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