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앙리 레비, 미셸 우엘벡 지음ㆍ변광배 옮김/프로네시스 발행ㆍ392쪽ㆍ1만,8,000원
베르나르 앙리 레비(62). 철학자, 소설가, 영화감독, 저널리스트. 1977년 저서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을 통해 교조적 좌파를 비판하며 '신(新)철학'을 주창, 68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한때 카뮈가 경영한 '콩바'지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분쟁지역의 비인간적 현실을 고발하는 글을 매체에 기고하는 등 참여 지식인을 자임해왔다. 하지만 "레비의 명성은 잦은 TV 출연으로 쌓은 인지도에 불과하다" "사회 문제를 제대로 모르는 '캐비어 좌파'(캐비어를 먹는 부자이면서 가난한 자의 편에 선다고 나서는 이들을 비꼬는 말)" 등 그에 대한 비난 또한 공공연하다. 인간의>
미셸 우엘벡(52). 소설가. 성적 영역에서조차 경쟁에 내몰린 서구인의 삶을 그린 첫 장편소설 <투쟁 영역의 확장> , 성 풍속을 중심으로 부모 세대인 68세대와 서구의 자멸을 묘파한 두 번째 장편소설 <소립자> 등으로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작가. 하지만 그에겐 '섹스에 집착하는 자' '여성 차별주의자' '허무주의자' 등의 꼬리표가 붙어 있다. "이슬람교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종교"라고 독설했다가 고소 당했다. 어머니에게서마저 "거짓말쟁이, 사기꾼에 돈과 명예를 위해선 뭐든 한다"고 욕을 먹는다. 소립자> 투쟁>
프랑스의 이들 두 문제적 지성이 2008년 1월부터 7월까지 반년 간 주고받은 28통의 편지를 묶은 책이 <공공의 적들> 이다. 당시 프랑스에선 "우엘벡이 누군가와 공동 집필하고 있다"는 소문만으로, 책의 저자와 제목이 알려지기도 전에 10만 부가 예약 판매되는 초유의 기록이 수립되기도 했다. "우리 둘 다 상당히 경멸을 받아 마땅한 자들" "최근 타임 지는 프랑스 문화와 지성의 끔찍한 쇠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 두 사람을 선정했다"는 자기 비하성 합의 아래 두 사람은 진검 승부를 펼치는데, 그 무대는 바로 문학과 현실, 역사, 철학, 예술이다. 공공의>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면서도 다른 자산가를 경멸했던 레비의 아버지, 부유층을 상대로 고산 스키를 안내하며 생계를 꾸렸던 우엘벡의 아버지 얘기를 통해 상대방의 정신적 뿌리를 탐색하던 두 사람은 점차 거시적인 주제로 나아가며 분명한 입장 차를 드러낸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문제. 우엘벡은 "1950년대 카뮈, 사르트르, 이오네스코, 베케트 같은 작가들을 모두 받아들였던" 프랑스가 반세기가 흘러 "이상하게도 나와 같은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서구 유럽을 '죽은 자들의 세계'로 규정한다.(84~85쪽) 그 대안으로 러시아를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한 사회'로 예찬하는 우엘벡에게 레비는 맞받아친다. "개처럼 취급 당하고, 조직도 엉성하며, 수동적인 노동자 진영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러시아. 그런 러시아의 모습에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들이닥칠 운명을 본다."(88~89쪽)
'우파 아나키스트' 우엘벡도 굴하지 않는다. "내가 사회참여자가 아닌 이유는 바로 무신론에 가까운 이데올로기적 절제 때문입니다.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민주주의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106쪽) 그러면서 그는 서구 유럽이 민주적 절차를 알리바이 삼아 "공공의 의지가 개별 의지를 과도하게 억압하는 사회"라고 꼬집는다.
어떤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신념대로 살아온 두 강골의 면모가 여실한 책이다.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빚으면서도 끝까지 이성과 품격을 지켜내는 두 사람의 자세가 성숙한 토론 문화를 엿보게 한다. 책을 펴기 전에 품었던 기대에 비해 내용이 다소 사적인 주제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지만, 오늘날 서구 지식인 사회의 동향과 현안을 파악하고, 국내에도 다수 번역된 두 저자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법하다. 프랑스 사회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바탕한 번역자의 주석이 책을 읽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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