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72ㆍ사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최고경영자(CEO)가 된 것은 1991년 2월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이후 은행장 8년, 부회장 2년, 회장 9년 등 꼬박 19년이 흘렀다. 그는 이제 CEO 재임기록을 20년으로 늘리게 됐다.
신한지주는 26일 이사회를 열고 라 회장을 상근이사(임기 3년)로 재추천했다. 라 회장은 다음달 24일 열리는 주총과 이사회에서 회장으로 다시 선임(4연임)될 예정이다. 단독 오너가 없는 은행권에서 은행장과 회장을 포함해 20년 넘게 CEO를 맡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라응찬은 누구
라 회장의 '뱅커 경력'은 올해로 51년째다. 반세기 이상을 금융 일선에 몸담은 '현역 최고령 뱅커'이기도 하다. 선린상고 출신으로 59년 농업은행에 입사, 대구은행과 제일투자금융을 거쳐 82년 재일동포들이 세운 신한은행의 설립 멤버(상무)로 참여했다. 2001년 지주회사 설립 이후 굿모닝증권(2002년)-조흥은행(2003년)-LG카드(2006년)를 잇따라 인수ㆍ합병(M&A)하면서, '신의 손'이란 얘기까지 들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설립 20여년만에 신한은행(지주)이 국내 최대금융회사로 성장한 배경에는 라 회장의 역할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노태우 정부 시절에 취임해 지금까지 5개 정권을 거치며 CEO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자기관리에 철저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고비와 반전
당초 금융권에선 라 회장이 이번 임기를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했다.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고개를 든데다, 지난해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라 회장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의문의 50억원을 전달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라응찬 시대'도 막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라 회장도 '마음을 비웠다'는 소문이 금융권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좀처럼 대외활동에 나서지 않던 라 회장이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라 회장이 마음을 바꾼 것 같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신한측은 이에 대해 대주주인 재일교포가 라 회장의 퇴진을 강력히 반대했다고 설명한다. 차기 회장으로 꼽혔던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은 물론 이백순 신한은행장까지도 취임한 지 1년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라 회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날 경우 경영공백이 생길 것을 재일교포들이 크게 우려했다는 것이다.
임기 채울까
3년 임기를 더 보장받았지만 라 회장이 그 임기를 다 채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최대 악재였던 '박연차 게이트' 부분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장기집권'에 대한 정부 당국의 비판적 시각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라 회장이 1년 정도만 회장직을 맡다가, 신 사장에게 '대권'을 물려주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계의 한 고위 소식통은 "이번 연임과정에서 라 회장이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임기를 다 채우지 않겠다는 뜻을 금융 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한지주는 이날 이사회에서 최근 마련된 은행권 사외이사 모범규준에 따라 사외이사를 12명에서 8명으로 줄이고, 절반인 4명을 교체했다. 신임 이사로는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장관, 필립 아귀기이너 BNP파리바 본부장과 재일교포측 인사 두 명(히라카와 요지ㆍ김휘묵)이 추천됐다. 공식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라 회장은 정부의 'CEO-이사회의장 분리' 방침에 따라 CEO만 맡고 이사회의장직은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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