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과제인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을 돌고 난 뒤 김연아(20)는 양 주먹에 힘을 잔뜩 실어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허공을 갈랐다. 이보다 더 만족할 수 없다는 표정. 넋을 잃고 감상한 1만5,000여 관중의 경탄에 감동한 듯 양 귀를 감싼 김연아는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오로지 이 순간만을 머리 속에 그리며 자신과 씨름해왔던 그였다. 마지막 점프인 더들 악셀을 뛰고 난 뒤 금메달을 확신한 듯 펄쩍펄쩍 뛰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연기를 마치고 들어오는 김연아를 한동안 지긋한 미소로 쳐다보기만 했다. 현역 시절 두 차례 올림픽에서 은메달만 2개 딴 한을 제자가 풀어준 셈.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라서도 수 차례 울컥하며 눈물을 쏟은 김연아는 취재진이 기다리는 믹스트존에 와서야 감정을 추스르고 소감을 밝혔다. 믹스트존은 김연아의 한마디를 들으려는 전세계 기자들로 인산인해. 줄잡아도 100명은 돼 보였다. 외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연발한 김연아는 "큰 짐 하나를 내려놓은 것 같다.
다음 목표는 3월 말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고, 이후 선수 생활을 계속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취재진 앞에서는 "연기를 마치자마자 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데, 너무나 원했던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가장 큰 시험을 1등으로 끝냈으니 피겨 생각을 잠시 잊고 다른 하고 싶은 일도 있을 터. 그러나 김연아는 "지금은 올림픽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졌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밝혔다. '월드챔피언'으로서 그간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김연아는 또 "130점대, 잘하면 140점을 기대했을 뿐 이 정도로 높은 점수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남자 선수들이 받는 점수인 데…"라며 웃었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