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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한은 총재, 국민청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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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한은 총재, 국민청문 하자

입력
2010.03.0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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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로 4년 임기를 끝내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요즘 심경은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쉽고 섭섭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부터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권 실세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으로선 보기 드물게 임기를 채우며 조직의 정체성을 지켜낸 것은 앞부분이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한달 전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체면을 구기기는 했으나 이후 과감한 금리 인하를 주도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대과없이 관리해온 것도 그의 홀가분함을 더할 것이다. 재임기간 중 정부와 시장에서 한은의 위상이 적잖이 높아졌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성태 총재 퇴임 회한 많을 듯

반면 명백히 한은 총재 연임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을 거의 찾기 힘든 것은 이 총재로선 섭섭하게 여길 법하다. 지금까지 하마평에 오른 인물의 면면을 보면 딱히 큰 점수를 줄 사람도 없고, 해외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가보면 한국처럼 연륜이 낮은 인사를 보기 힘든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총재가 지금 가장 아쉬워할 대목은 출구전략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점일 것이다. 이 총재는 지난 연말부터 출구 쪽으로 조금씩 몸을 움직여야 할 때라는 것을 생래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릴 순 있으나 거둬들일 순 없다는 비유까지 꺼냈고, 1년 째 2%에 머물고 있는 기준금리를 조금 올린다고 해도 금융완화 기조를 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수차 강조했다. 그러나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던 지난 달에도 그는 금리를 올리지 못했다. 혼자 감당하기에 불확실성과 위험이 너무 커서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 외신은 한국은행을 '정부 조력자(helper)'로 칭하며 이 총재의 쓰린 마음에 소금을 뿌렸다.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만큼 금리인상 전망이 후퇴한 국가는 없다"라는 비아냥은 그렇다 해도, "이 총재의 후임에 보다 온건한 후임자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그 보다 더 온건한 후임은) 상상하기 힘들어졌다"라는 대목은 한때 '소신과 원칙에 충실한 인플레 파이터'로 불리던 그로선 거의 모욕이다.

이 총재는 얼마 전 국회에서 한은 독립의 필요조건을 묻는 질문에 한은의 한계를토로하며 "지도층에 해당하는 영향력 크고 목소리 큰 분들이 잘 협력해줘야 좋은 정책이 나온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은 물론, 주변에서 툭하면 출구전략 시기상조론을 언급하고 정부는 급기야 금융통화위원회 열석 발언권까지 행사하며 확장기조를 압박하는 상황을 한은의 제한된 권한만으로 거스르기 힘들다는 뜻일 게다.

사실 중앙은행의 독립과 자율이 어디까지냐는 것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문제다. 이 총재의 말처럼 이 부분은 국가의 지배구조와 밀접하게 연결 돼있고, 한 나라의 역사와 철학이 녹아있는 문제다. 강만수 전 장관과 이 총재가 2년 전 한은의 위상을 놓고 정부의 일부분이냐, 국가기관의 하나냐를 놓고 대립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바로 이런 논란 때문에 한은 총재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의 지명만으로 한 자리 얻은 사람에게 정부와 결이 다른 독립적 통화신용정책을 주문하는 것은 너무 과한 요구다. 더구나 정권 임기와 총재 임기가 정확히 반씩 중첩돼있는 만큼 정권 교체기 한은 조직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국회 인준절차는 꼭 거쳐야 할 건설적 과정이다.

차기 총재 자질·도덕 검증필요

하지만 만시지탄으로 제기된 청문회는 물 건너갔다. 관련 입법절차를 마련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새 총재가 임명될 이달 중순 이전에 여야가 특별 임시국회를 열 수도 있으나 청와대와 여당의 꿍꿍이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전문가들이 꼽은 한은 총재의 덕목-통화정책 독립성, 거시경제 전문성,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 위기 대응 및 관리 능력, 정부정책과의 조화-을 검증할 무대는 물론 최소한의 도덕성을 따져볼 기회가 날아간 셈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눈과 압력으로라도 청문회를 대신할 수밖에 없다. 국회와 언론이 중간에 서면 국민경제의 호민관 역할을 할 의지와 자질을 걸러내는 일을 못할 이유도 없다. 정부가 허튼 짓만 하지 않는다면.

이유식 논설의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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