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심 법원 판결의 공개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다. 헌법 제109조에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과거에는 법원이 매년 판결문을 모아 판결집이라는 이름으로 책자를 간행, 공개하였다. 그 후 인터넷이 생기자 대법원은 선진 외국의 예를 좇아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여기에 법원 판결을 올려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법원은 3심 판결, 즉 대법원 판결만 공개하고 1, 2심 판결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물론 3심제 하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최종판결이므로 굳이 최종 판결도 아닌 1심이나 2심의 하급심 판결(법원은 1심, 2심 판결을 '하급심 판결'이라고 한다)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다.
대법판결만 공개해서야
2008년 12월 현재 일반민사사건(소액사건을 제외한)의 경우 전체 37만여건 중 대법원 판결건수는 1만여 건으로 3% 이하이다. 또한 벌금사건을 제외한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전체 35만여건 중 대법원 판결사건은 1만4,000여 건으로 4%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96~97%는 1, 2심 판결, 즉 하급심 판결이다. 결국 대법원 판결만 공개한다는 것은 전체 법원판결 중 3~4%만 공개하는 셈이다. 이것이 어떻게 헌법에 규정된 판결공개의 원칙에 맞겠는가.
그러나 숫자 비율보다 더 중요한 점은 판결정보의 내용이다. 대법원은 소위 법률심이라고 하여 2심 판결의 법률논리가 정당한지 여부만을 재판하고 2심 판결이 한 증거 채택이나 사실 인정이 정당한지 여부는 재판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문만 가지고는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결국 우리 법원처럼 1, 2심 판결을 빼고 대법원 판결만 공개하는 것은 마치 축구경기를 보도하면서 경기내용은 보여주지 않고 스코어만 보도하는 TV방송과 같다. 한 마디로 판결을 공개하는 의미가 거의 없다.
선진외국은 어떤가?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하급심의 판결을 최고재판소 판결과 꼭 같이 공개하고 있다. 혹자는 법원이 하급심 판결까지 공개하려면 정보량이 너무 많아 국가 비용이 많이 들 터인데 과연 국민들 중 몇 사람이나 하급심 판결문을 보겠는가 라고 공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비용 걱정은 핵심이 아니다. 우리나라 법원은 수년 전부터 1, 2심 판결을 전자정보로 바꾸어 법원의 내부전산망에 올리고 있다. 전국에서 약 2,500여명의 법관과 수천명의 법원 직원들이 패스워드만 입력하고 내부전산망을 통하여 하급심 판결 내용을 원본 그대로 열람하고 다운로드 받고 있다.
만일 법원이 이 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대한변호사협회에 공급하여 대한변호사협회로 하여금 전국의 변호사, 대학교수 기타 신청자에게 공개토록 하면 큰 비용이 들지 않고도 간단하게 국민의 정보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또 어떤 분은 만일 1, 2심 판결정보가 공개되면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져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물론, 일리 있는 우려이다.
사생활 침해 우려는 기우
그러나 지난 수년간 수천명의 법관과 법원직원에게 하급심 판결정보가 원본 그대로 공개되었어도 국민의 사생활 침해 문제가 크게 논의된 적이 없다. 미국 등 선진외국에서도 수년간 전 국민에게 판결문을 그대로 공개하였지만 사생활침해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수천명의 법관과 법원직원들, 수천만의 외국 국민들에게 공개된 1, 2심 판결정보가 한국의 변호사들에게 공개된다고 하여 갑자기 사생활 침해가 생기는 것일까? 1, 2심의 하급법원 판결정보는 3심의 대법원 판결 정보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공공자산이다. 법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평등하게 똑같이 접근(Access) 기회가 주어지도록 공개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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