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목메달'이 아니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질주본능, '스피드 코리아'를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에 각인시킨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태극전사들은 1등에만 목을 메는 구세대가 아니었다.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지 못하면 목을 매달아야 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빗댄 표현인 '목메달'은 이제 우리 의식에서 지워야 할 시점이다.
값진 은ㆍ동메달을 획득하고서도 단지 금메달이 아니란 이유로 한숨짓던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같았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국가를 대표해 선 시상대에서도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그들은 전혀 주눅듦이 없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이 그랬고, 모태범과 이상화(이상 한국체대)가 뒤를 이었다.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선 은메달을 따고도 일명 '시건방춤'을 추며 기뻐했다. 국가와 민족에 충성을 다짐한다는 유신시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달달 외운 세대들의 눈엔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보일 만큼 당돌했다.
이들에겐 애초부터 금기(禁忌)가 없었다. 아시아인의 체격과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스피드스케이팅 1만m에서 보란 듯이 금메달을 움켜쥐었고, 피겨스케이팅에선 김연아가 쇼트와 프리에서 동시에 역대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따내는 사상 초유의 그랜드슬램(그랑프리 파이널, 4대륙대회, 세계선수권, 올림픽)을 달성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를 동시 석권한 신화는 한국이 새로 쓴 역사다. 이런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쾌거의 원천을 'SㆍPㆍEㆍEㆍD'로 요약하면서 두 번째 요인으로 'Passion'(열정)을 꼽았다.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모두 1988년, 89년생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에 대한 열망도 숨기지 않으며, 당당한 자기표현과 확신에 걸맞은 준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이민훈 박사는 "이들 신세대들은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다"며 "남들은 다 되는데 우리는, 나는 왜 안돼? 라는 과감한 도전정신이 밴쿠버에서 찬란한 수확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렇듯 기성세대가 '우린 안돼' 라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했던 종목들에서 신세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금메달을 캐냈다. 쇼트트랙 대표선발에서 탈락했다고 포기하는 나약함 대신, 종목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으로 맞섰다. 국제규격에 맞는 빙상경기장이 태릉 한 곳뿐인 '만원버스 같은 경기장' 현실도 이들의 도전을 꺾지는 못했다.
훈련할 장소가 없어 일본에 가서 대표 선발전을 치른 봅슬레이팀은 또 어떤가. 하지만 그들은 아시아 국가론 최초로 결선무대에 오르는 기적을 낳았다. 전문가들은 "불가능이 없는 한국 스포츠의 신화, 그 중심에 금기를 금기로 인정 않는 신세대들의 당찬 DNA가 흐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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