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60년간 가슴에 묻었던 한을 풀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이름 없는 병사의 유해가 59년 만에 딸의 품으로 돌아왔다.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9월 4일, 대구에 살던 양손호씨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한국군에 입대했다. 당시그의 나이는 26세. 부인과 아직 아빠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생후 5개월된 외동딸을 둔 가장의 몸이었다. 짧은 신병 훈련을 마친 양씨는 그해 11월 서울에서 급하게 재편성된 국군 2사단 32연대에 편입됐다.
안타깝게도 전황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앞서 9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이후 호전됐던 전세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달라졌다. 50년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이어진 중공군의 이른바 '신정 공세'에 경기 가평에서 중공군을 상대했던 2사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사자 유해발굴을 책임지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07년 11월 가평에서 2사단 32연대의 집단 유해36구를 발굴했다. 전투가 끝난 뒤 주민들에 의해 가매장 된 듯했지만 신원을 확인할 만한 단서는 없었다.
다행히 2009년 2월 양 일병의 딸 양순희(60^대구 달성군)씨가 감식단측에 자신의 유전자(DNA) 샘플을 등록하면서 뒤늦은 부녀 상봉이 가능해졌다. 감식단은 25일 부녀의 유전자가 가족임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순희씨는 "아버지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실감하기 어렵지만 60년간 부모 형제 없이 살면서 가슴에 묻어둔 한을 풀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감식단은 지금까지 발굴한 국군전사자 유해 3,300여구의 유전자와 전사자를 찾기 위해 피를 뽑은 유가족 1만 여명의 유전자 샘플을 비교해 신원 확인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전사자가 13만여명에 달해 유전자 비교작업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 인식표 등 직접 단서가 없어 유전자 비교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 경우는 이번이 세 번째다.
51년 1월 1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양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친 뒤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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