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는 함모씨(42)는 지난해 9월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로부터 개인워크아웃 대상자로 선정돼 빚을 성실히 갚아 나가던 함씨는 당시 아들이 갑자기'갑성설관 낭종'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었던 그는 신복위에서 실시하고 있는 소액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찾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자격 요건은 충분히 되지만 대출기금이 바닥 나 한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수술 날짜를 잡아 놓은 상태라 돈을 빌리지 못하면 사채라도 써야 할 긴박한 상황.
다행이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신복위가 그를 우선 대출자로 선정해 가까스로 500만원을 빌릴 수 있었다. 함씨는 "소액금융 기금이 넉넉해 나 같이 절박한 사람들이 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빚을 갚아나가는 저신용자들에게 대출해주는 기금이 고갈 직전 상태다. 경기 침체로 대출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지만 기업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무관심으로 재원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신복위에 따르면 올 2월 소액금융지원 기금이 15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달 평균 50억원 이상의 대출 수요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불과 3개월 후 면 기금이 완전히 바닥이 나 소액 대출을 해 줄 수 없는 위기 상황을 맞은 것이다.
소액금융지원 사업이란 신용회복 지원을 받아 1년 이상 성실히 변제 중이거나 변제를 끝낸 영세 자영업자 또는 저소득 근로자가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등으로 급전이 필요할 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제도.
신용회복 지원을 받기 때문에 일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저신용자들은 이 기금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어, 기금 고갈은 이들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빚을 성실히 갚아가다가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겨 급전이 필요할 때 소액금융을 이용하지 않으면 사채를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의 '신용회복' 프로그램은 무위로 돌아가고, 다시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소액금융은 채무조정자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판 역할'을 해 그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실제 신복위에 따르면 채무조정자의 중도 탈락율이 평균 30%에 달하지만 소액대출을 지원받은 사람의 개인워크아웃 탈락율은 평균 0.4%로 매우 낮다.
기금이 바닥 난 가장 큰 원인은 기업들과 지자체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신복위의 소액금융 기금은 기업이나 지자체의 기부금과 금융지원(무이자 차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최근 이같은 지원이 사실상 끊겼다. 올 초 기업은행이 10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면서 그마나 숨통을 트기는 했지만 남은 기금은 150억원으로 올 한해 대출 목표액인 500억원에 한 참 못 미친다. 특히 지자체의 경우 재원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서울시나 경기도 등이 아직 지원에 나서지 않은 상태다.
양승준 신용회복위원회 경영지원본부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어 기금 부족이 심각한 상태"라며 "정부와 금융회사, 지자체, 기업 등이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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