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폐물 처리가 원전 운명 좌우" 지하 490m서 빈틈없는 준비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A4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2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뷰르 지역. 광활한 평야 지대 가운데 난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30여분 정도 더 들어가자 목가적인 주변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건물 2개동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의 방사선폐기물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인 ANDRA의 지하 490m 지하 시험시설 입구이다.
안전사고 대처 요령을 교육받고 산소 호흡 구명 기구 세트와 땅 속에서도 작동되는 개인 GPS기기를 지급 받은 뒤 안전모를 쓰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발 밑 엘리베이터의 틈새 사이로 내려다 본 수직 갱도는 바나나처럼 굽어져 보였다. ANDRA 관계자는 "착시현상일 뿐 실제로는 수직 갱도"라고 설명했다.
숨을 가다듬으면서 7분 정도 내려가자 엘리베이터가 멈춘 뒤 문이 열리면서 미로 같은 지하 동굴 세계가 펼쳐졌다. 소형차 크기의 작은 트랙터가 쉴 새 없이 오갔고, 암벽 곳곳엔 다양한 크기의 구멍이 각종 실험장치들과 연결돼 있었다. 방사선 폐기물을 이곳에 저장할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조사하기 위한 시설이다. 깜짝 놀라 "그럼 지금 방사선이 나오고 있는 것이냐"고 묻자 "실제 방폐물을 갖다 놓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시뮬레이션만 하고 있다"며 안심시켜줬다.
프랑스가 뷰르 지하 시험 시설을 만들게 된 것은 1991년 방사선폐기물 심층처분 연구법이 제정된 데 따른 것.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게 되면 사용후 핵연료를 비롯 다양한 방사선 폐기물이 나온다.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원전의 안전성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원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게 프랑스의 판단이다.
단순히 건설과 운용뿐 아니라 방폐물까지도 완벽하게 처리해야 진정한 원전 강국이라 할 수 있다는 것.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있는 프랑스는 이 때 발생하는 3%의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과 수명 35년 이상의 장수명 중준위 폐기물을 땅 속 깊이 묻는 방식으로 처리할 경우의 환경 영향 등을 알아보기 위해 이 시설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시설도 잠정적인 조치일 뿐이다. 프랑스는 안전하고 확실한 해결책을 찾게 되면 이 시설에 저장된 방폐물을 다시 꺼내 영구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결정은 후손들이 하는 것이라는 게 이들 철학이다. 프랑스는 다만 단수명 중준위 폐기물과 저준위 폐기물은 이미 콘크리트 매립 방식으로 천층처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앞으로 300년간 주변 환경 영향 등을 지속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ANDRA가 다른 곳이 아닌 뷰르에 지하시험 시설을 짓게 된 것은 지질학적으로 이곳이 심층 처분장을 건설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넓고 균질적인 점토 암반층이 형성돼 있어서 심층처분 방폐장을 지을 경우 가장 안전한 것으로 분석된 것. 점토 암반층은 강도가 물러서 부적합할 것이라는 선입관과 달리 균열이 생겨도 점토 암반층이 저절로 균열을 메우는 치유력을 갖고 있다.
특히 이곳 지하 시험시설을 짓는 데 투자된 자금이 무려 7억유로이다. 우리나라에도 대전에 위치한 원자력연구원이 심층처분 시험 시설을 갖고 있긴 하다. 그러나 깊이는 100m, 건설비는 47억원에 불과하다. 프랑스와 비교할 때 깊이는 5분의1, 건설 투자비는 230분의1도 안 되는 셈이다.
프랑수와 미쉘 고노 ANDRA 회장은 "원전 강국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 지도자의 의지"라며 "프랑스가 원전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샤를르 드 골 전 대통령이 원전을 통해서 에너지 독립과 안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강력한 원전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역 국회의원으로 유력 정치인이기도 한 그는 "정권이 계속 바뀌는 속에도 이러한 원칙이 흔들리지 않았다"며 "이와함께 꾸준한 투자와 기술 개발 등이 원전 강국으로 가는 요건"이라고 덧붙였다.
뷰르(프랑스)=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원전 강국' 프랑스는…원전 59기 '넘버2'… 年 30억유로 전기 수출
프랑스는 현재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원전 59기를 운영하고 있는 원전 강국이다. 일찌감치 원전을 개발키로 한 뒤 꾸준한 투자를 진행한 덕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특히 1959년부터 10년간 국정 수반을 지낸 샤를르 드 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평소 "프랑스는 석탄도, 석유도, 가스도 없다"며 "에너지 독립을 위해선 원자력 이외엔 다른 선택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프랑스는 정부의 강력한 주도로 원자력 산업을 추진한다. 특히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원자력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당시 프랑스는 1년에 무려 6기의 원전을 발주하며 사실상 원전에 올인했다. 이에 따라 현재 프랑스 전체 전력 생산량의 77%를 원전이 담당할 정도다. 전기를 수출해 벌어 들이는 돈도 연간 30억 유로를 넘는다. 프랑스는 지금도 원자로뿐 아니라 연료 생산 및 공급,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원자력 관련된 전반적인 연구ㆍ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선단식 원자력 산업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45년 설립된 원자력청(CEA)은 원자력 연구 및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 조직으로 연간 예산만 20억유로(한화 3조1,200억원)에 달하고, 전문 인력도 1만6,000명이나 된다. 프랑스의 원전은 모두 국영 전력회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 소속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어 원전 설비 발주, 우라늄 채광과 전환,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 등은 핵연료공사(AREVA)가 담당하고 있다. 이외에도 원전 건설업체로 프라마톰-ANP, 알스톰 등이 있고, 에너지원료관리기관(DGEMP), 원자력안전관리기관(DGSNR), 방사선안전연구원(IRSN), 지역산업환경관리기관(DRIRE)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박일근 기자
■ "한국 원전홍보 노하우 놀랍다"… 佛에 한수 지도
우리나라가 지난해 말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프랑스를 제치고 원전 4기를 수주하는 쾌거를 이룬 데 이어 이번에는 우리나라 원전 관련 기관들이 프랑스를 직접 방문, 원자력 홍보 노하우를 전수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과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은 19일 파리 북부의 프랑스 원자력청(CEA)을 방문, 제8차 한ㆍ불 원자력 홍보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 이재환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은 "기후 변화를 오히려 원자력 르네상스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먼저 원전에 대한 국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신헌 한수원 실장도 "한국에선 원전 주조정실까지 방문객들에게 개방하며 원전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데 힘을 쓰고 있다"며 "지난해 원전 방문객이 무려 47만명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또 이철호 방페물관리공단 팀장은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방페장 부지의 안전성 검증 전문가 선정도 주민에게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서민원 원자력연구원 팀장은 "지난해 개원 50주년을 맞아 전시회와 그린콘서트, 세미나 등을 개최, 전년대비 기사 노출수가 60% 이상 늘었다"고 소개했다. 이계휘 원자력안전기술원 선임연구원은 "이메일 클럽 운영, 정보공개 모니터 회의와 오피니언 리더 및 지역주민 설명회를 통해 원자력 안전과 규제를 설명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비해 나탈리 길롬 CEA 부국장은 "프랑스의 원자력 정책은 중앙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온 터라 사실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의 전통이 없다"며 "원전에 대해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려 해도 정작 시민들 참여는 부진하다"고 털어놨다. 세드릭 가니어 CEA 부장도 "마쿨 지역에 위치한 원자력 홍보관인 비지아톰의 지난해 방문객은 수만명 수준"이라며 "한국의 원전 홍보 노하우가 놀랍다"고 말했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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