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시절 제임스 딘을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반항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뾰족한 턱과 날카로운 눈매는 성격파 배우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욱 하는 성격도 외모 못지않다. 전 부인 마돈나와 함께 가다 파파라치에게 주먹 맛을 보여주기도 했고, 부인에게 키스하려 한다며 애먼 남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성격 개조는 역시나 힘든지 지난해 가을에 파파라치에게 발길질을 했다가 18개월의 실형을 살 위기에 처해 있다.
숀 펜. 할리우드에서 이토록 수컷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배우가 또 있을까. 수 틀리면 금세라도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휘두를 듯한 이 연기파 터프 가이가 또 한 번 변신에 성공했다. 단단한 주먹은 풀려서 곧잘 입가로 향하는 섬섬옥수가 되었고, 일자로 굳게 다문 입은 재잘거리는 수다로 활짝 열렸다. 마초 이미지가 강한 그에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게이. 숀 편이 '밀크'에서 도전한 새로운 연기 영역이다.
'밀크'는 19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게이 해방구로 만든 하비 밀크의 철철 끓어오르던 인생 후반부를 전한다. 미국 최초의 게이 시의원인 그의 삶이 숀 펜의 몸을 빌려 현현한다. '엘리펀트'와 '굿 윌 헌팅' 등을 연출한 거장 구스 반 산트라는 굵은 이름이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숀 펜을 위한 영화이고, 숀 펜에 의한 영화다.
영화의 시작은 뉴욕이다. 보험회사 직원 밀크는 지하도에서 만나 첫 눈에 반한 스콧(제임스 프랑코)을 통해 새로운 삶에 눈을 뜬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감추고 살며 그저 그렇게 삶을 마감하리라 여기던 그는 스콧과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기며 인생의 전기를 맞는다. "나이가 마흔이나 됐는데 잘한 일이 하나도 없다"고 넋두리를 하던 그는 커밍아웃을 하고 난 뒤 뒤늦게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극적인 삶을 걷게 된다.
타고난 사교술과 화술을 지닌 그를 중심으로 게이들이 모이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지역은 곧 게이 커뮤니티가 된다. 그는 자연스레 게이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시의원에 출마하고, 세 차례 낙선 끝에 의회에 입성한다. 미국 전역에 불던 보수 기독교주의에 맞서 싸우며 그는 캘리포니아의 게이 인권법 폐지를 저지시킨다. 영화 속 한 등장인물의 말은 밀크의 굳은 신념을 반영한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면 언젠가는 당신의 권리도 박탈당한다."
숀 펜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가는 밀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강렬한 남성의 이미지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제3의 성을 세운다. 살살거리는 걸음거리와 연인을 껴안고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짓는 모습이 영락없이 여자다.
승리감에 젖어 있던 밀크는 사사건건 그와 대립했던 동료 의원의 흉탄에 쓰러진다. 피를 뿜으며 몸이 꺾이던 밀크의 눈에는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오페라 '토스카'의 포스터가 들어온다. 비극적인 최후이지만 밀크의 불꽃 같은 삶의 여정이 오버랩되기에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장면이다.
감독 산트의 연출력은 건재를 과시한다. 당시의 기록 필름을 연출 화면과 맞물리며 1970년대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대립의 화로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숀 펜은 이 영화로 지난해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04년 '미스틱 리버'에 이어 두 번째다. 감독으로서도 인정받고,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까지 지낸 그의 종횡무진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25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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