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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개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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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개의 선물

입력
2010.02.2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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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리 생활 10년 동안 개와 나는 애증 관계였다.

은현리에 살러 들어왔을 때 오래 비어있던 집이어서 마당이 개똥밭이었다. 동네 개들이 똥 누고 가는 뒷간이 마당이었다. 쌓인 개똥을 치우는 데 꼬박 열흘이 걸렸다. 그 다음엔 사람이 살고 있는데 여전히 마당으로 똥 누러 오는 개들과의 전쟁이 있었다.

고함을 지르고 몽둥이를 들고 지켜봐도 당당히 똥 누러 오는 개들을 이길 수 없었다. 이웃이 가르쳐준 묘책대로 개를 키웠다. 잡견인 암놈 '영희'와 수놈 '철수'였다. 그 개들로 마당은 똥밭 신세를 면했지만 개를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끼니마다 개밥 챙겨주는 일이 힘들었다.

모임에 나갔다 개밥 챙겨준다고 서둘러 자리를 뜨는 일이 많아졌다. 두어 끼 밥을 챙겨주지 못하면 죄처럼 마음의 짐이 되었다. 개는 사람이 주는 정을 그대로 돌려준다.

밤늦게 술에 취해 컴컴한 들길을 터벅터벅 혼자 돌아올 때 그놈들이 내 발자국 소리를 멀리서부터 알아듣고 마중을 나오는데 감격해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영희는 마당에서 두 번의 출산을 했다. 출산일이 극적이었다. 한 번은 눈 내리는 12월25일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또 한 번은 새해 첫날인 1월1일에 제 새끼들을 낳아 주인을 감동시켰다.

개로 인해 나는 여러 편의 시를 썼다. 개가 나에게 시를 선물했으니, 은현리에서 개와 나는 좋은 이웃인 것이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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