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여건에도 어떻게든 약자들을 돕고자 고군분투하는 많은 경찰관이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격자만 있을 뿐 신원조차 오리무중이던 폭행치사 피의자를 5년여 동안이나 추적해 검거한 부산 사상경찰서 김경오(46) 경사. 그는 "딱한 가정 형편에 가장마저 잃고 막막해하던 유족들의 표정이 내내 잊히지 않았다"며 "그래서 사건 해결의 의지를 굽히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4년 9월16일 오후 10시께 부산 북구 화명동 정모(38)씨 집 앞 평상. 옆 건물에 살던 강모(49)씨는 정씨와 술을 마시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데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정씨를 밀어 넘어뜨렸다. 정씨는 땅바닥에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그 즈음 화물차를 몰다 잠시 쉬던 정씨에게는 15살 난 딸과 노모가 있었다.
일정한 직업 없이 혼자 살던 용의자는 사건 직후 종적을 감췄다. 수배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으나 이렇다 할 제보도 없이 사건은 난관에 빠져들었고 시일이 흐르면서 미제사건으로 분류됐다.
당시 부산 북부경찰서에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김 경사는 하지만, 매달 최소 한 차례씩 노숙자시설 장애인보호시설 등에 연락을 취해 강씨의 행적을 캤고, 정씨 집에도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었다.
"목격자가 있고, 강씨의 얼굴을 아는 이들도 있는 뻔한 사건이잖아요.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흔들린 적은 없어요."하지만 이따금 주위의 눈총이 없지는 않았다고 했다. "답도 안 나오는 사건을 붙들고 너무 시간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불평하는 동료들도 없진 않았어요. 다들 바쁘니까요."
사건의 실마리는 지난 해 11월 27일 용의자 강씨가 만취한 채 정씨 집에 나타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도피 중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사실을 발설한 것. 소식을 들은 김 경사는 병원들을 탐문, 강씨의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한 후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최근 강씨를 검거했다.
김 경사는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연쩍어 하면서도 "이 일이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경찰관들의 평판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23일 강씨에 대해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강성명 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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