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A(82)씨는 꽃다운 10대에 집안 어른의 소개로 남편 B(86)씨와 백년가약을 했다. 부부는 동네에서 금슬 좋기로 소문이 났다. 함께 일하고 의지하면서 3남매를 훌륭하게 키웠고, 봉사 활동도 늘 나란히 다녔다.
60년을 넘게 이어 온 부부의 사랑도 세월의 벽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2008년 남편이 노환으로 몸져누우면서 할머니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할아버지는 간간이 치매 증세까지 보였다. 할머니는 이런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남편이 병석에 누운 지 1년 반이 다 돼 가던 지난해 10월 9일 오후 3시 30분께 할머니는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한복 바지끈으로 할아버지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할머니는 경찰에서 "남편이 산송장처럼 집에만 누워 있는 게 측은해 저 세상으로 일찍 보내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날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너무 괴로워하기에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법도 이런 사정을 간과하지 않았다. 청주지법 형사11부(부장 김연하)는 A씨에게 살인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 5년(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피고인이 60년 넘게 같이 산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한 죄는 가볍지 않다"며 "하지만 피해자가 숨을 헐떡거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목을 조른 점, 살해 후 따라 죽겠다고 한 사실, 피해자의 자녀들이 피고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있는 점, 피고인도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청주= 한덕동 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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