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식구라 부르는 밥집이 있다. 한옥인 그 밥집에는 손님의 이름이 새겨진 밥그릇, 국그릇, 수저가 있다. 인간문화재가 만든 방짜 유기다. 밥집 안벽에 오동나무로 칸을 만들어 놓았는데 칸마다 그릇들이 들어있다. 그릇들은 오직 이름의 주인이 왔을 때 내어놓는다. 물론 내 이름이 새겨진 그릇도 있다. 그 밥집에는 차림표가 없다. 차려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맛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철음식이 대부분이며 매일매일 끼니끼니 음식이 다르다. 귀하고 비싼 음식도 아니다. 철따라 날씨따라 밥상이 차려진다. 곧 쑥이 올라오면 상큼한 쑥국이 나올 것이다. 봄 도다리에 맛이 오르면 도다리 회도 나올 것이다. 비 오는 날이면 우리밀 칼국수가, 눈 오는 날에는 얼큰한 생선국이 나온다. 당연히 조미료는 쓰지 않는다. 그 밥집의 밥상이 입맛이 까다로운 나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밥상에 대해 이것저것 투정을 하면 주인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 날로 출입금지다. 여름에는 그늘과 바람이 있어 시원하고 겨울에는 군불을 땐 방바닥이 쩔쩔 끓는다. 여기저기 꽃이 피는 마당은 넓고 뒤란에는 오래된 장독들이 정겹다. 단 그 밥집은 정직하지 못한 정치가나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졸부는 받지 않는다. 그 밥집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신가? 그런 밥집은 없다. 십수 년 전쯤부터 꿈꿔온 내 꿈속에 있을 뿐.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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